▲ 배혜숙 수필가

밀양 표충사는 특별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구국승병을 이끈 사명대사의 호국성지이기 때문이다. 절집의 주인은 당연히 대광전에 앉아 계신 부처님이다. 주인부터 만나는 것이 순서이나 일주문을 들어서면 승병을 모아 국난극복에 앞장선 서산, 사명, 기허 대사를 모신 표충사당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한 층 높은 곳의 사천왕문을 지나면 탑이 서 있는 공간이고 다시 층계를 밟아 올라야 대광전이다. 부처님이 한참 아래로 굽어보는 곳에 보물 제 467호인 표충사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휴일이라 가족단위의 탐방객들로 절 마당은 붐빈다. 따스한 겨울 햇살 속으로 키가 큰 손자가 등 굽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석탑 앞에 선다. 할머니는 허리를 주욱 펴고 탑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 시선이 상륜부를 지나 쭉 뻗은 찰주 끝을 향한다. 그 속도가 한참 느리다.

“우야꼬, 하늘이 와 저래 파랗노.”

손주는 얼른 할머니의 허리를 두 손으로 받치고 저도 긴 목을 젖혀 하늘을 올려다본다. 겨울 하늘이 쨍하게 푸르다. 바람마저 고요해 탑의 지붕 끝에 걸린 풍탁은 미동도 없다.

▲ 표충사삼층석탑

1995년, 삼층석탑 해체 보수 작업 중 발견된 20구의 금동불상과 여러 공양물이 표충사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와 양식의 불상들은 석탑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귀중한 보물이다. 제약산 아래 절집에는 이렇듯 탑을 향한 순수한 신심을 발현하는 불자들이 다투어 모여 들었음을 보여준다.

청색의 하늘을 이고 있는 탑을 오래 보고 있으니 두 눈이 시리다. 유물관에서 본 400여 년 된 사명대사의 장삼을 볼 때도 그렇게 온 몸이 저려왔다. 대사는 네 차례에 걸쳐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가토 기요마사와 담판을 지었다. 연회색 장삼 자락을 펄럭이며 적진을 향할 땐 두려움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벽면에 걸려 있는 총 길이 142㎝의 장삼 앞에 서면 내 몸이 점점 작아진다. 그 장삼이야말로 절집을 수호하는 웅건한 탑이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