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차장

울산 울주군은 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보유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군 단위 지자체다. 막대한 예산 규모에 걸맞게 매년 적지 않은 신규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사업의 타당성과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수십 건의 용역을 발주한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십억 단위의 용역을 발주, 용역비에 소모되는 예산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런 군의 행보를 ‘용역공화국’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외부 기관의 전문성과 기술성, 창의성을 빌리기 위해 용역을 발주하지만 용역이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주 중간보고회가 열린 ‘울주군 관광개발 종합계획 수립 용역’이 하나의 예다.

군은 지난 2004년 수립한 관광 종합 개발계획 이후 울주 관광에 대한 중장기 종합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최근 변화되는 관광 여건과 관광객의 새로운 요구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용역을 통해 영남알프스를 중심으로 산악과 해양을 아우르는 중장기 종합 관광계획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용역비는 약 3억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역의 현실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해 용역이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용역사는 지역을 언양과 범서, 청량, 온양 등 4개 앵커로 구분하고 각 관광 분야별 특화 아이템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왜 온양을 미디어 아트와 미디어 해설 전시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아트 플랫폼 기능으로 조성해야 하는지, 언양은 왜 지역성을 살린 직거래 중심지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은 설명하지 못했다. 체류형 관광의 핵심인 먹거리와 숙박에 대한 뚜렷한 답안도 제시하지 못했고, 오히려 특별할 것 없는 지나치게 많은 아이템을 제시해 혼란만 야기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지역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울주의 역사와 전통, 지역색 등에 대한 이해 없이 겉으로 드러난 수치상의 지표만 보고 접근하다 보니 어느 지자체에나 통용될 수 있는 모범답안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용역은 현재 군이 추진 중인 공무원 연구팀의 용역과 대비된다. 군은 외고산 옹기마을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공무원들로 구성된 연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군이 예외적으로 공무원들을 활용해 옹기마을 명소화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용역 때문이다. 군은 지난해 두 차례 공고를 통해 용역 업체를 찾았지만 번번이 유찰돼 공무원 연구팀을 만들고 사업 계획을 직접 수립키로 했다. 행정과 토목, 건축, 학예사 등 다양한 직렬로 구성된 연구팀은 옹기마을의 실태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직원과 경험과 능력을 갖춘 기술직 직원의 협력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신규 사업을 시작하기 전 용역이 불가피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최소 수천만원이 투입되는 용역비와 수개월 이상의 시간, 특이점 없는 결과물을 감안한다면 지역 사정에 밝은 공무원 자원을 활용한 연구 방안도 고려할 시점이 됐다. 행정 혁신은 공직자들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머리를 싸매 해법을 찾을 때 달성될 수 있다. 외부 용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관행을 과감하게 버리면 예산과 시간 절약은 물론,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향상되고 이에 따라 더 큰 성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춘봉 사회부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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