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봄일기-입춘에’ 전문(이해인)

오늘은 입춘(立春)이다. 말 그대로 봄이 일어서는 날이다. 간혹 入春(입춘)이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틀린 것이다.

입춘이란 말은 중국 황제가 동쪽으로 나가 봄을 맞이하고 그 기운을 일으켜 제사 지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立’에는 ‘곧’ ‘즉시’라는 뜻이 있어 이제 곧 봄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도 같은 원리다. 영축산 꼭대기에는 눈이 가득 쌓였는데 통도사 경내에는 벌써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맘 때 울산대곡박물관은 입춘축 나누기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1930년대 울산에서 유행하던 32가지 입춘축 문구를 소개했다. 이 문구들은 1933년 울산군 향토지에 실려 있다.

 

울산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표현은 수여산부여해(壽如山富如海, 수명은 산과 같고 부는 바다와 같기를), 우순풍조시화세풍(雨順風調時和歲豊, 비와 바람은 순조롭고 한해 농사는 풍년들기를), 소지황금출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開門萬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깃들기를) 등이었다. 이같은 입춘축들은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입춘불공을 중요하게 여긴다. 입춘날 울산 근처 절이나 암자에는 입춘불공을 드리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산으로 오르는 이들이 많다. 입춘불공은 정통 불교신앙은 아니지만 봄을 기다리는 서민들의 갈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입춘축 한번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속담이 괜히 생겨났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창궐하는 요즘, 봄기운이 충만해야 할 입춘이 우울하기만 하다. 경제는 경제대로 우울하고, 정치는 정치대로 우울한 입춘이다. 올해는 정말 제대로 된 입춘축을 써서 문설주에 한번 붙여 볼까나.

春(춘)은 풀(艸) 사이로 태양(日)이 그려져 있는 형상이다. 겨우내 깊이 잠들었던 만물이 싹을 틔워 봄 햇살 아래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모습을 그렸다. 입춘 즈음에 추위가 찾아오면 ‘입춘에 오줌독(장독·김칫독) 깨진다’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을 곧잘 인용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입춘이 지나가면 또 봄은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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