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모 현대청운중학교 교사

교사에게 첫 시간, 첫 번째 만나는 학급이 중요하다. 그 날의 수업 흐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첫 교시를 잘 보내면 하루가 잘 풀리고, 첫 교시에서 뭔가 삐걱대면 다음 수업 또한 매끄럽지 못하다. 뻔히 알면서도 오늘 첫 반 수업부터 실책을 범했다.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수업했니?” 필자는 수업 마칠 때마다 ‘O반 OO페이지까지’라고 살짝 메모를 해둔다. 이를 기점으로 다음에 수업할 내용을 미리 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부착했던 메모지가 떨어져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 시작하자마자 학생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업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 지 교사가 모른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교탁 맨 앞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한다. 옆 학생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수선한 30초가 지나갔다. 어쨌거나 진도를 알아내어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칠판이 지저분했다. 칠판을 지우고, 수업을 시작했지만 교실 분위기가 붕 떠있다는게 느껴졌다. 20분쯤 지나니 내가 가져온 분필 2개 모두 부러졌고, 하필 교실에 분필이 없었다. 학생 한 명을 교무실로 보내 분필을 가져오는 동안 수업의 흐름이 또 끊겼다.

교사가 틈을 보이거나 수업 흐름이 끊기는 상황을 학생들은 귀신같이 알아낸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후회가 들었다. 수업시작 종 치기 5분 전에 교실에 들어왔더라면, 진도 표시 메모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분필 케이스 통째로 들고왔더라면. 온갖 생각을 애써 숨기며 수업을 재개했는데 역시나 학생들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누구나 멋진 수업, 멋진 교실을 상상하곤 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고, 학생들의 인성을 가다듬어주고, 학생들은 배움을 통해 성장하면서 교사의 가르침에 공감하는 장면 말이다. 나 역시 이런 장면을 상상했지만 준비 소홀로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조용히 해라, 집중해라, 칠판 봐라 등 순간순간 닦달하기 바빴다. 어느 순간에 고함소리가 터져나오고, 학생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익숙한 장면이 연출됐다.

종이 쳤고, 학생들과 나는 교무실, 화장실, 매점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창피함과 미안함과 머쓱함이 밀려왔다. ‘시작부터 영 안 좋네.’ 복도를 걸으며 1교시를 곱씹어봤다. 첫 시간은 분필도 생소하고, 칠판도 낯설기 마련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눈은 떴지만, 뇌는 반쯤 졸고 있다. 나조차도 아침에 몽롱할 때가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번 첫 교시를 알차게 보내지 않은 나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는 문구이다. 조는 학생, 다른 곳을 쳐다보는 학생도 결국 내가 자초한 일이다. 수업시작 전에 미리 교탁에서 수업준비를 마치면 1교시를 알차게 보내게 되고, 시종일관 좋은 수업을 해줄 수 있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완벽한 준비가 완벽한 수업을 보장한다. 김경모 현대청운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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