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인, 감동줄 수 있는 내공 쌓아야
뛰어난 작품 흉내내도 모사품에 불과

▲ 박현수 서양화가

피에로(pierrot), 서커스단에서 대중을 위하여 항상 웃는 얼굴로 분장한 어릿광대를 말한다. 대중가요에 ‘울고 싶어도 웃고 있는 피에로’란 가사도 있다. 자기표정이 없다. ‘나운아’ ‘너훈아’라는 가명으로 노래하는 대중가요 가수가 있다. 이 가수들도 진짜 ‘나훈아’만큼 노래도 잘한다. 그러나 진짜 나훈아가 무대에 서면, 많은 대중들이 열광한다. 가짜 나훈아들은 아무리 흉내를 내도 진짜를 따라갈 수 없다. 서양미술사조에 입체파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화가는 피카소이다. 피카소는 입체파라는 미술사조(美術史調)를 자신이 만들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다. 피카소 자신도 표현세계에 한계가 왔었다. 고민 중 세잔의 전시작품을 본 것이다. 그는 전시장을 나오면서 “세잔은 영원한 나의 스승이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는 세잔의 작품 <과일이 있는 정물>과 <생빅트와르 산>의 작품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은 것이다. 쏟아질 듯한 접시 위에 담겨있는 과일은 눈높이의 표현 원칙과 다른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생빅트와르 산이 원근법 표현원칙과 다른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피카소는 작업실로 달려가서 다양한 각도에서 본 소녀의 얼굴을 펼친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녀>라는 작품이며, <성난 얼굴>이란 작품도 이 원리에서 탄생되었다. 입체파라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탄생시킨 화가가 되었다.

필자가 울산공고에 근무할 때다. 점심시간 전에 은행갈 일이 있었다. 당시 울산광역시교육청은 현재 강남교육지원청에 자리했다. 은행가는 나를 볼땐 교육감이 방으로 부르기도 했다. 차를 한잔 마시든 중 교육감이 물었다. “저 작품이 누구작품인가?” 내가 잘 아는 미술동료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자 “자세히 봐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그 친구의 작품보다는 조금 어수룩한 면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작가 사인을 보았다. 그 친구 이름이 아니다. “어느 동료가 나에게 선물한 것인데 나는 이 작품을 청사에 걸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교육감이 내뱉었다. 모사품인 것이다. 미술애호가 즉, 소비자들은 미술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눈높이가 높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학생미술인 중에 석고상 소묘를 매우 잘 하는 선배가 있었다. 그는 “내가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는데…”라면서 미술대학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입시미술학원 강사 또는 미술학원을 운영했었다. 그 선배의 그림은 학원의 벽에는 걸렸어도 전시장에 걸린 경우는 없었다. 이후 몇 년 안가서 미술학원을 접고 다른 일을 했다. 당시 누군가 미술대학으로 가자고 설득 했었으면 했다. 재능이 아까운 선배였다.

대학에서 이렇게 배웠다. 이경석 교수의 강의 중 이런 말씀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 그림을, 대학에서 책 읽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글 쓰는 법을, 강단에서 가르치는 법을 배웠다. 미술은 표현력만 뛰어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감동받고 미술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내면이 있어야 한다” 또 “전래동화도 좋은 소재가 된다. 책을 많이 읽어라. 그래서 미술교사도 작품을 하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과거에도 지금도 이 분을 흉내내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삼국유사를 통해 많은 스토리텔링을 남겼다. 그리고 조선왕조신록의 한 줄로 72편의 드라마를 얻어낸 위대한 스토리를 가진 민족이다. 많은 스토리텔링을 가진 민족이 문화민족이다. 미술인들은 형상(形狀)만 잘 옮겨 그리는 것이 미술의 전부인양 생각한다. 서예를 포함한 미술인들도 소비자들에게 감동줄 수 있는 내공을 쌓았으면 좋겠다. 자기 생각이 없는 피에로는 되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동작업실과 미술협회 부설 연수원 설치가 요구되기도 한다. 박현수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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