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당신이 그립습니다(신선미作) - 엄마 냄새는 사탕보다 달콤했습니다. 엄마가 가만히 안아주기만 해도 서러움도 억울함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엄마의 품은 마법입니다. 고왔던 당신이 언제나 그립다고…, 이제 내가 당신을 안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J언니는 손잡는 걸 좋아합니다. 만나면 두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반갑게 안부를 묻지요. 처음 언니의 환대를 받았을 땐 나도 모르게 뭉클해지며 마음의 빗장이 스르륵 풀리는 게 느껴졌답니다. 언제부턴지 누구를 만나면 우선 경계부터 하고 있었나봅니다. 언니의 따뜻한 손길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굳어 있었는지를 알았습니다.

J언니와는 아들이 어릴 때 친구 엄마로 처음 만났지요. 내가 다른 아파트 단지로 이사한 후 한동안 못 만나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이삼 일에 한 번 쯤은 만나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어요. 같이 대공원 산책을 하고, 장을 보거나 백화점 나갈 일 있으면 시간을 맞춰 함께 가곤 합니다.

스킨십에 익숙지 않은 나는 언니랑 손을 잡고 걷는 것이 무척 어색합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빼내려고 머리를 쓸어 올리거나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습니다. 언니는 내가 볼 일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낍니다. 때로는 그 팔에 언니의 체중을 얹어 기대는 바람에 지치기까지 합니다. 그런 날은 사려는 물건은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언니의 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회만 찾게 되지요. 그러나 그것이 언니 식의 표현방식이란 걸 알기에 매정하게 내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언니의 자연스러운 애정 표현이 부럽답니다.

저는 감정표현이 서툰 사람입니다.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사랑은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품는 거라고 알고 자랐습니다. 어쩌면 살갑게 보듬고 쓰다듬고 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이 맞겠네요. 부모님은 일에 치여 허덕이셨고 남자 형제들 사이의 외동딸로 자라서 아기자기한 감정의 교류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제가 어릴 적엔 까불거리며 말도 잘하고 재롱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내성적인 아이로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부모님 사이의 어둡고 무거웠던 분위기가 저를 일찍 철들게 했나 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눈 맞추고 까르르거리는 아이의 웃음이, 엄마한테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고 부리는 투정이, 그리고 뜻도 모르고 남발하는 ‘엄마, 사랑해’하는 고백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지를요. 그래서 마음이 참 아프네요. 저는 너무 과묵한 딸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아들이 주말을 이용해 집에 다니러 왔습니다. 피곤한 지 점심때가 다되도록 잠을 자더군요. 아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며 한 번 씩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데도 아들이 집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하든지요. 점심 먹고 떠나는 녀석을 KTX역에 데려다 주려니 좀 서글퍼졌습니다. ‘또 한동안은 못 보겠구나, 이제 같이 사는 일은 영 없겠지….’ 그런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플랫폼으로 들어가기 전에 녀석이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이 남기고 간 포옹의 감촉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답니다.

친정에 다니러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다정하게 부모님 손을 잡고 어깨도 쓰다듬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드리자고요.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일거리 처리하느라 늘 바빴습니다. 구석구석 치우고 무거운 이불 빨래를 하고 반찬을 만들고….

친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어머니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습니다.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 모처럼 다정한 딸 노릇을 했어요. 내 어깻죽지에도 못 미치는 자그마한 어머니를 내려다보면서 언제 이렇게 작아졌는지 놀랐습니다. 대학생이 된 나를 데리고 양장점에 갔던 엄마는 이렇게 작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옷을 사고 나서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갔습니다. 안과에서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다기에 병원에도 들렀습니다. 어머니가 잘 듣지 못해 일방적인 요구만 했었던지 의사가 저한테 이것저것 설명하더군요. 이제는 제가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J언니가 요양원에 계신 시아버님을 뵙고 꼭 안아드렸다는 얘길 한 적이 있어요. ‘나도 할 수 있을까’ 물었더니 ‘그냥 하면 된다’고 쉽게 말하더군요. 친정집에서 나오는데 부모님이 현관으로 따라 나왔습니다. “한번 안아봅시다.” 하고 어머니를 덥석 안았는데 얼른 고개를 돌리더군요. 어머니는 요즘 마음이 약해져서 걸핏하면 눈물을 보입니다. 뒤에 멀찍이 서계신 아버지께도 “얼른 오세요.” 하니 손사래를 치면서 어서 가라고 하시더군요. “에이, 얼른 오세요.” 했더니 마지못해 주춤주춤 걸어 왔습니다. 힘주어서 꼭 안아드렸지요. 아버지도 저를 마주 안아주었습니다. 듬직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품이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마치 물기가 다 빠진 겨울나무처럼 푸석해서 바람이 들 것만 같았습니다. 한 번 더 힘을 줘 꼭 안았습니다.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워 둥둥 떠서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포옹한 것은 철이 든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요. 한동안은 두 분만 지내는 시간이 덜 외로울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 윤미숙씨

■윤미숙씨는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1년 에세이스트 신인상 등단
·2013년, 2015년 에세이스트 대표에세이 선정

 

 

 

 

▲ 신선미씨

■신선미씨는
·울산대,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한밤중 개미요정’ 초대전(블루스퀘어, 서울)
‘개미요정 다시 만나다’ 초대전(갤러리선컨템포러리, 서울)
‘개미요정의 유희’ 초대전(갤러리선컨템포러리, 서울)
‘그림 속 그림이야기’ 초대전 (갤러리 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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