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의 고충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일까. "살인"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고간 안타까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원망과 자성의 기회를 갖는 것조차 이젠 방관자의 사치라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26일 밤. 만취상태에서 행패를 부리던 50대 가장이 딸의 도움을 받은 부인에 의해 살해됐다. 이 가장은 심야에 술에 취한채 귀가해 가족들에게 "다 죽여버리겠다"고 흉기를 휘두르며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런 위협적인 모습을 보다못한 23살난 큰 딸이 부엌에서 고춧가루를 가져와 아버지의 눈에 뿌려 흉기를 떨어뜨리게 했고, 그 틈을 타 흉기를 주은 부인이 남편의 가슴을 찔렀다. 남편을 죽인 부인은 112신고를 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부인은 살인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이 가장은 술에 취해 귀가한 뒤 밤늦게 까지 잠자지 않고 수능시험을 준비하던 작은 딸(21)을 괴롭히다 부인이 만류하는 데 격분해 밤새 행패를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15년 전부터 가정폭력을 일삼아온 이 가장으로 인해 단란해야 할 가정은 늘 불안속에서 살얼음 위를 걸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전. 희귀병에 걸려 6년 넘게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 온 딸의 치료비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40대 가장이 딸의 목숨을 이어온 산소호흡기의 전원을 꺼 숨지게 했다. 이 가장의 비극은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경추탈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리면서 시작됐다. 중3이 지나면서 마비현상이 심화되고 급기야 기도 손상으로 혼자 숨을 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딸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목숨을 유지했다. 불치병에 시달리는 딸의 치료를 위해 택시기사로 번 돈은 물론 집까지 팔아 쏟아 부었지만 딸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빚만 눈덩이 처럼 불어났다. 결국 돈문제로 부인과 싸운 다음날 밤 이 가장은 딸의 산소호흡기 전원을 끄고 말았다. 뒤늦게 후회한 가장은 119에 구조요청을 했지만 딸은 이미 뇌사상태에 빠진 뒤였고 며칠뒤 최종 사망판정을 받았다. 이 가장은 범행직후 부인에게 "내가 딸을 죽였다"고 털어 놓았고 부인의 신고로 영안실에서 붙잡혔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며 동정론도 들끓었지만 분명한 살인행위이므로 마땅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희귀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이 사건은 "무전유죄"의 비극이기에 앞서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의 방관과 구조적인 문제를 깨우쳐 준 일종의 경종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죄책감이 앞선다.

 "살인을 당한 가장"과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힌 가장의 기구한 운명을 보면서 "돈놀이"로 어수선한 정치판에 대고 "생명과 가정의 존엄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고 민생을 먼저 챙기라고 한다면 그들은 또 무슨 구차한 언변을 늘어 놓을지 뻔하다.

 그렇다고 정치판만 나무랄 것도 못된다. 지금 우리는 소비적이고 관능적인 쾌감문명에 가정의 윤리와 도덕을 내어 준 지 이미 오래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외면하는 스와핑(부부교환)커플이 전국적으로 6천여명에 이른다는 고발에도 그저 무감각하니 말이다. 오히려 "사생활 침해"라는 반격에 어쩔줄 모르고 있다. 익명으로 쏟아내는 욕설과 비난은 물론 진실을 뭉개는 타협문화에 떠밀리고 있고 인터넷과 휴대폰 등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웃과는 철벽을 쌓고 사는 우리가 아닌가.

 "국민소득 2만불 시대"와 "선진 복지사회"라는 장미빛 비전에만 부풀어 있을 것이 아니라 극심한 생활고와 가정폭력 앞에 몸서리치는 서민들을 더이상 벼랑끝으로 내몰지 않는 사회안전망부터 서둘러 찾아 봐야 할 때이다. jocap@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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