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다수결을 뜻하는 데모크라시
동양식 해석 민주주의는 보다 철학적
격동기 주인으로서 ‘民’의 역할 기대

▲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선거철이다. 국민은 투표하는 날만 자유롭다는 말이 있다. 표를 받아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나 표를 던져 정치를 시키려고 하는 사람이나 모두 민주주의를 입에 담는다. 그런데,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민주주의란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유래나 심오한 의미를 따져보고 또 생각해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서양 그리스에서는 일찍부터 데모크라시(Democracy)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한다. 이 단어는 다수(Demo)에 의한 통치(Cracy) 즉 다수결의 원칙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다수에 의한 통치와 우리가 입에 담는 민주주의는 동일한 뜻일까? 민(民)이란 피통치자의 의미가 강하다. 특히, 평민(平民)이라는 말을 넘어 자조적인 서민(庶民)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피통치자 중에서도 사정이 좋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듯하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헌법 제11조 제1항).’ 그런데 국민 중에 서민이 있고, 또 적민(嫡民)을 두어 적서차별(嫡庶差別)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하여간 고래로 민은 통치의 대상을 지칭한다.

그럼, 주(主)는 어떤가? 주는 통치자의 입장이다. 고조선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봉건시대 이 땅의 주상(主相)은 한 사람이고 이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 반역자였다. 주상이 스스로 민본(民本)이라는 말은 쓸 수 있어도 감히 민주라는 말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입만 열면 민주(民主)라는 말을 쓴다. 어디 그뿐인가. 이념(주의 ism)까지 덧붙여져 있다. 어떤 독일철학자의 말마따나 정반합(正反合)도 이런 정반합이 없다.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돌려보면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등 이념 또는 주의(ism)라는 용어는 일반적이지만 데모크라시즘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그럼, 어떻게 수 천년 동안 반역의 말이 한국, 중국, 일본, 심지어는 북한까지 일상용어가 되었을까? 어떤 저명한 학자의 말에 의하면 민주라는 말은 데모크라시의 번역과정에서 생겼다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편전쟁 이후 학자들이 데모크라시를 번역하면서 민주라는 말을 조합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요시노 사쿠오조(吉野作造)가 1914~1916년 무렵에 중앙공론(中央公論)에서 썼다고 하며, 한국에서는 1920년경 개벽(開闢)이라는 잡지에서 게재된 적이 있다고 한다. 다른 유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대화의 산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동양삼국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서양과는 달리 좀 더 철학적이다. 필자는 민주주의와 데모크라시를 비교해보면 민주주의 단어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데모크라시에 대해, 미국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통치(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고 했다. 링컨의 말은 동양의 민주주의개념에 좀 더 접근해 보이지만 사실 서양의 데모크라시는 다수결의 원칙에 골간을 둔다. 데모크라시는 집단의 의사결정에 대한 방법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영미법에서 절차적 정의(Due Process)를 중시하는 것도 이념보다는 다수결이라는 방법에 천착해서 생긴 법리인 듯하다. 이에 반하여 동양삼국의 민주주의는 피지배자이면서 동시에 지배자인 정반합을 넘어 이념(주의)까지 나아갔다. 비록 민주 개념이 서양에서 수입한 것이지만, 번역과정에서 생긴 말이 자연법상의 본질에 더 가까워 보인다.

법전을 뒤적여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주권자가 된 국민은 사람을 선출하는데 참여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표를 받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를 대의민주제라 한다. 한국은 대의민주제를 기본으로 하고 직접민주제를 가미하고 있다. 혼란스런 시대에 주인으로서의 국민의 역할이 기대된다. 민(民)은 민(民)이기도 하지만, 주(主)이기도 하다.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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