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등 선거에 영향 미치는 정책정보
향후 인사를 매개로 거래되어선 안돼
공무원들은 ‘공복’의 자존심 지켜야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지난 울산시장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여러 사람이 기소됐다. 유무죄 여부는 앞으로 사법부에서 가려질 것이다. 언론에서는 청와대, 경찰 등 권력기관과 후보 당사자를 비롯한 선거캠프의 불법행위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필자에게는 울산시 공무원들의 기소 사실이 더 눈에 띄었다. 공무원을 동원하여 관권선거를 치르던 60~70년대도 아니고, 보통의 일반직 공무원들이 공직선거 사범으로 기소되는 경우는 요즘 그렇게 흔치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는 헌법 규정에 따라 신분과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어 있다. 또한 공무원법, 공직선거법 등에서도 공무원의 정치개입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는 공무원은 특정 정파가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public servant)로서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봉사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선거에서의 승리가 목표인 정파나 후보들은 선거과정에서 공무원을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물론 과거처럼 대놓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노골적인 선거운동에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 그래서 은밀하면서도 효과적인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공무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다년간의 공직 경험을 통해 특정 지역의 현안, 실현가능한 해결방안, 소요되는 정책비용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기대와 선호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선거에 도움이 되는 공약을 만들 수 있고, 유권자들의 지지 획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공무원의 입장에서도 유력한 후보나 정파의 요구를 그냥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무시했다가는 혹시 당선 후에 받을지도 모르는 인사상의 불이익이 걱정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확실한 ‘줄’을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무원에게 승진과 보직 등 ‘인사’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고, 정파나 후보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마저 ‘인사권은 나에게 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검찰 같은 권력기관 구성원들도 인사권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점을 감안하면 일반 공무원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선거판에서 공무원은 정책정보의 공급자이고 정파와 후보자는 수요자다. 이들 간에 ‘인사’를 매개로 거래가 가능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거래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해요소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인데, 이것이 특정 후보나 정파에 의해 좌우되면 민주주의 근간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거래는 절대로 성립돼서는 안 된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는 것이 시장의 근본 원리이다. 이 시장에서 공급자인 공무원이 먼저 나서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거래는 정파와 후보에 의해 시도된다. 이런 점에서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세력은 공무원에게 정치적 거래를 시도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인사에 민감한 공무원들의 처지를 활용하여 불법적 거래를 시도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영혼을 매수하는 것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공무원의 입장에서도 이런 정파적 거래를 통해 인사상의 이익을 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물론 공무원 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권력자의 자의적인 인사가 공무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공익의 최후 수호자로서 단호히 거래를 거부함으로써 공복(公僕)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것이다.

선거 후에 논공행상의 정실인사로 공직사회가 뒤숭숭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는 공직사회의 불만, 전문성 저하, 이로 인한 행정력의 낭비로 이어져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곧 선거가 다가온다. 정파와 후보들은 공직사회를 흔들지 말고, 공무원들도 자존감을 지켜주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