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설화 속 역신은 전염병 상징
막연한 공포심에 휘둘리기 전에
처용과 같은 차분한 대처가 필요

▲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새해를 맞이하며 예정되어 있던 공식·비공식의 행사와 모임을 취소한다는 연락이 줄줄이 전해졌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이다. ‘신종’이라는 접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염 경로나 병증, 위험도와 치사율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욱 큰 것 같다. 불분명한 위험 앞에서 사람의 공포감은 무한대로 증식되는 경향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원인이나 치료법을 잘 모르는 이상한 질병을 ‘괴질’이라고 불렀다. 전파력이 강하고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며 죽게 만드는 콜레라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콜레라는 고통이 크고 치사율도 높아 호역(虎疫)이나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렸다. 마치 호랑이가 살을 물어뜯는 것처럼 아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사료를 통해 추측해보면 호열자 말고도 장티푸스나 이질 같은 복합적인 수인성 전염병도 괴질이라고 불렸다. 당시에는 세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호열자를 귀신의 탓으로 여기거나, 쥐가 옮긴다고 여겨 고양이 그림을 부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개항 이후에는 사람과 더불어 ‘균’의 이동이 국제화되면서 전염병의 치명적인 피해도 국경을 넘어 확장되었다. 주로 개항장이 기점으로 지목되곤 했는데, 당시에는 연락선이 출입하는 항구가 지금의 공항과 비슷한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균에 대한 지식과 함께 근대적 의료기술이 도입되었고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 방법도 소개되었다. 위생과 방역을 위한 제도 역시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도 위생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의료 공급도 불충분했기 때문에, 일단 콜레라에 걸리면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다.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 초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해남도 등 중국 남부에서 귀환 동포 3150명을 싣고 부산으로 입항한 수송선의 상륙이 일주일 이상 미뤄졌다. 항해하는 동안 선상에서 콜레라와 파라티푸스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행정을 책임지고 있던 미군의 방역부가 격리 소독을 실시했지만 허사였다. 선상에서 사망한 콜레라 환자를 바다에 수장시키는 바람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육지에 상륙한 콜레라는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6월로 넘어가면서 서울 등지에서 환자가 발생하자 전국이 ‘콜레라 공포증’에 빠져들었다. 신문지상에는 콜레라 확산 보도와 함께 방역을 위한 홍보 기사가 반복해서 실렸다.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신고하라’거나 환자를 숨기는 바람에 집단으로 발병하게 된 비극이 보도되었다. 1946년 10월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1만5000명 가량의 환자가 발생해서 96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7할에 가까운 치사율을 보였으니, 콜레라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공포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합리적 사고와 태도를 방해하기 쉽다. 사람을 인격이 배제된 균의 매개체로 인식하거나 환자를 죄인 취급하는 식이다. 실제로 전근대 시기에는 호열자의 습격을 막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망을 보다가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패서 내쫓기도 했다.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력으로 살아남아야만 했던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과학적인 치료법과 예방법, 방역에 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이동과 접촉을 멈출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자력구제 못지않게 공공적 대처를 위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또 체계적이고 신속한 방역과 치료에 대해서도 개인보다는 국가의 책임이 절대적이고 결정적이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전염병 그 자체 못지않게 사람들의 불안을 키우는 가짜뉴스나 지나친 공포감을 조장하는 반사회적 행동, 또 다양한 범죄 시도가 더 큰 위험일 수 있다.

울산을 무대로 하는 처용설화에는 역신(疫神)이 등장한다. 이 역신은 전염병을 상징하며 그것을 물리친 것이 처용이라는 해석이 있다. 신종코로나를 앓고 있는 오늘의 지구촌에서 역신을 몰아낼 처용은 합리적인 시민의식, 정부의 효과적인 대처, 그리고 국가 간의 신속한 정보교환과 공조일 것이다. 역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휘둘리기보다는 처용의 차분한 대처가 필요한 때이다. 허영란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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