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 인구 증가와 소비력 확대는
미국의 미래사회를 보장하는 축복
인종주의 우월감은 시대착오적 발상

▲ 한규만 울산대 교수·영문학

현재 미국은 탈 백인사회 과정에 있다. 백인의 수는 줄어들고 유색인종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다문화주의와 포용주의가 다양한 민족 융합과 다양한 문화를 일으켜 미국을 세계 1등 국가로 올려놓았음은 지난 칼럼에서도 설명했다. 그 중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인종(?)은 흑인도 아니고 똑똑한 한·중·일의 아시아인도 아니다. 바로 히스패닉(Hispanic)이다. 미국사회에서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면서 히스패닉의 소비력이 커지고, 사회문화적으로 히스패닉 파워가 부상하고 있다.

히스패닉이란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며’ ‘가톨릭을 믿는’ ‘중남미계 주민’을 말한다. 이 용어는 미국 인구조사에서 사실상 ‘인종’ 개념처럼 사용하지만, 실은 ‘언어’ ‘종교’ ‘지역’ 개념의 복합체이다. 현재 미국 제2의 인구그룹은 히스패닉이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 ‘2017년 인구추계(Population Estimates)’에 따르면 미국 인구 구성은 백인 76.6%로 1위이며 히스패닉이 18.1%(5894만명)로 2위를 차지한다. 3위가 흑인 13.4%이다. 2035년경 히스패닉 인구수는 미국 인구 4명당 1명꼴에 육박하는 23%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백인 수는 점점 감소하고 히스패닉 인구는 급증세다. 그 이유는 이혼과 낙태를 금지하는 가톨릭의 종교적 영향으로 출산율이 높은데다, 특유의 낙천적 생활스타일 등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의 ‘월드이슈’에 따르면 히스패닉이 미국 사회 곳곳에서 정원사, 보모, 건축 일용노동자, 식당 종업원 등 저임금의 육체노동을 대부분 담당하며,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텍사스주 등 주로 미 대륙의 서부에 밀집돼있던 이들이 이제는 남부 주는 물론 뉴욕, 뉴저지, 워싱턴DC, 버지니아주 등 동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세력들은 걱정 반 기쁨 반인 듯하다. 이들이 미국정치와 사회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백인 기득권세력은 이들을 경계하고 혐오하며 인종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한편, 히스패닉 인구 증가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들 덕분에 향후 미국은 노쇠와 고령화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번영할 것이라는 희망이다. 좀 잘 산다는 선진국들이 부양받을 노인은 많고 부양할 젊은이는 줄어드는 가운데 연금개혁 문제로 사회가 파멸 직전이다(사실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노인을 부양해줄 젊은 히스패닉이 늘어나면서 이를 막아주고 있으니 히스패닉은 미국사회에 축복이라는 시각이다.

여타 독일, 한국,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저출산-인구감소와 고령화에 직면해 있지만 미국 학교에는 히스패닉 학생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곧 미래의 미국 노동자이며 백인노인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을 부양해 줄 것이다. 그런데 근시안적인 백인청년들은 이들을 향해 최근에도 총을 난사하는 인종범죄를 저질렀다. 스스로 인종적, 지역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우둔한 사람들이 악마의 속삭임에 놀아나는 것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인종적, 지역적 우월주의자들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 이들을 심리학적으로 보면, 변화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무능한 패배주의자일 뿐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히스패닉의 도움을 격하게 받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불가사의한 미국내 성공은 실은 히스패닉 청소년들 덕분이라는 게 음반업계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다음 칼럼에서 다룰 ‘히스패닉의 소비패턴과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규만 울산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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