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눈이 녹아 비(雨)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水)이 되는 우수(雨水)가 내일이다. 이 무렵에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렇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이 있듯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진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우수를 기점으로 15일간을 삼등분해 계절의 변화를 표현했다. 첫 5일간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다음 5일간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은 초목에 싹이 튼다고 했다.

우수 즈음이면 통도사 경내에도 홍매(일명 자장매)가 발갛게 꽃을 피운다. 올해는 가지치기를 너무 심하게 해 예년의 화사함이 덜하지만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피는 홍매를 보면서 삭풍 속에서도 봄이 왔음을 직감한다. 꽃의 북상속도는 하루 평균 22㎞. 지금 울산에서는 매화가 양지쪽마다 막 피어나고 있으니 서울로 향한 꽃들의 걸음걸이도 한층 빨라져가고 있으리라.

 

우수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지난 2009년 허진호 감독이 만든 ‘호우시절(好雨時節)’이다. 제목을 우리말로 풀어쓰면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가 적당할 것 같다. 영화에서는 사랑의 비가 적당한 시점에 내려 사랑을 더욱 성숙하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제목은 중국 성당(盛唐)시대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 두보는 봄밤에 내린 단비를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희우’라고 표현했다. 희우와 비슷한 뜻을 가진 것으로 호우(好雨), 감우(甘雨) 등이 있다.

단비는 내릴 때를 스스로 알아(好雨知時節)
봄을 맞아 내리니 만물이 돋네(當春乃發生)
바람 타고 밤에 모르게 내리어(隨風潛入夜)
가랑비 소리 없이 모두 적시네(潤物細無聲)

초목이 물을 빨아올리기 시작하는 우수 즈음에 농촌에서는 가지치기를 한다. 물과 영양분이 필요 없는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다. 또 울산 상북면의 배내골과 가지산 등 영남알프스 일대에서는 고로쇠 물을 채취한다. 수피가 얇은 나무에다 청진기를 대면 물이 이동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세콰이아의 일종인 자이언트레드우드라는 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110m까지 자란다. 아파트로 치면 35층 정도다. 이 나무가 꼭대기까지 물을 빨아올리는데는 1100㎏이 넘는 펌프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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