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이 되는 상대에게 저항·거절 어려워
추스르기 어려울만큼 힘듦을 느끼면서도
당시 상황에서 거절하길 원한다는건 모순

▲ 배미란 울산대 법학과 조교수

며칠 전,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유명 무용가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에 관한 판결이 있었다. 비록 1심 판결이기는 하나, 동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거부나 반항을 하지 않아 신체접촉을 동의한 것처럼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행위자의 행위가 추행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현행법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강간죄나 강제추행죄 이외에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나 추행죄를 두고 있다. 그간 전자에 비해, 후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작년 가을, 대법원이 유명 정치인에 대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등의 성립을 인정하면서 동죄 등에 대한 판단기준 역시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형법 제303조)나 추행죄(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는 행위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간음이나 추행을 한다는 점에서는 전자와 동일하나, 간음이나 추행을 할 때에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이용하느냐, 또는 위력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에 비해 법정형이 낮다.

그런데 이러한 판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행위자가 피해자에 대해 위력을 가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해도 그러한 지위를 적극적으로 과시해서 간음이나 추행을 하지 않았다면 동죄가 성립할 수 없지 않느냐 라거나, 피해자는 왜 거부나 저항을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피해자도 상대방의 행위에 동의한 것이지 않느냐, 라는 물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판결은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먼저 위력의 국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상대를 압도할 만큼의 강력함 또는 그런 힘을 의미하고, 판례에서도 동일하게 이해한다. 다만, 힘이라고 해서 폭행 등과 같은 물리적 유형력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위나 권세를 가진 사람이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권세를 과시하면서 상대방이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을 가했다면, 그것은 법정형이 더 높은 협박을 수단으로 한 강간죄의 성립을 논할 일이지, 업무상 위력을 수단으로 한 간음죄나 추행죄를 논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왜 피해자는 거부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피해자도 동의한 것이 아닌가. 물론 아니다. 꼭 이러한 범죄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흔히 일어난다. 상대방의 요청에 원치 않지만, 즉답할 수도 없어 회피하거나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받아들이는 경우 말이다. 이에 대하여, 위 판결은 설령 외견상 피해자가 동의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어떤 사정이나 상황이 있었다면 이는 ‘부진정 동의’로서 실제로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의문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절하기 힘든 여러 상황과 성폭력범죄의 상황은 다르지 않느냐고. 그러한 상황일수록 더욱 명확하게 거절하거나 저항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건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두려운 사람과 어떠한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사람을 더 두려운 상대로 이해해야 할까.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상대방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더 저항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것이고, 본인에게 닥친 상황이 어렵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게 사람이다. 더군다나 가끔은 절도를 당한 사람이나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에게는 피해자답기를 요구하는 경향도 있다.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답게 본인을 추스를 수 없을 만큼의 힘듦을 느끼면서, 동시에 당시 상황에서는 정확하게 거절하기를 원한다는 건, 모순이 아닐까. 배미란 울산대 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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