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영일 장생포 아트스테이 문학입주작가

가끔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고안했다고 여겨지는 영감에서 시작된 글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나는 지금 오름길인가, 내림길인가를 점검하곤 한다.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지 제동페달을 밟아야 할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울산의 레지던시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한 이미 효율과 혁신을 경험하고 있다는 안정감이 들어서다. 작가는 작업실이라는 방을 얻기만 해도 오름한다. 가속페달을 밟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어차피 예술은 착각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작가는 출간하기 전 대부분 신뢰하는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을 참고한다. 당연히 신뢰할 만한 비평은 도움이 된다. 전문가든 아니든 정서적으로 연대감을 이루는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까다로운 트집과 생색마저도 솔직하게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척도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작품을 완성하여 출간이라는 오름길에 이르게 되었다는 현실은 성장과 고통을 인정하게 하고 그 자체가 보상이다.

장생포 아트스테이 레지던시에 있으면 출간하기 직전에 작가에게 일어나는 일을 겪고 있다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위안과 격려, 그것이다. 작가에게 창의성을 발현할 공간이라는 공감대는 중요하다. 어쩌면 자신만의 우주라는 창의성을 드러내기에 필요한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시대와 세태와 공감하는 데 오름길에 이르는 첫 번째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20일, ‘울산 창작공간들 작가 유치에 사활’이라는 제호의 기사가 본지에 실렸다. 그리고 지난주에 장생포 레지던시는 응모가 마감됐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작가만의 방으로 들어설 그들은 자신만의 창의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울산은 창의성을 경영하는 조직창의성에 눈을 뜬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작가의 방은 블루오션이라는 목적지에 닿는 전략을 짜는 동굴이 될 것이다. 창의성을 지휘하는 시작점, 혹은 가속페달이 필요한 오름길에서 뼛속까지 작가인 그들은 시대와 연결되는 공감을 얻을 거라고. 그건 레지던시라는 작가의 공간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2월8일, 코로나19 사태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 소식을 알려왔다. 2월14일 발행된 워싱턴포스트(WP)지는 ‘한국의 불평등을 악몽처럼 그린다. 미국에서의 현실은 훨씬 더 나쁘다’라는 ‘기생충’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한국이라는 공간이 세계성이라는 공감대를 얻은 것이다. 그처럼 작가는 레지던시 공간에서 개인적이고 한국적인 창의성을 드러낼 것이다. 울산시는 조직창의성으로 작가라는 블루오션을 지휘할 것이다. 작가는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 오름길에서처럼 이제 자신만의 방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울산이 콘텐츠 함정에서 벗어나서 스토리텔링이라는 고유한 작가만의 드라마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시작이 오름길이라는 징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방이라는 공간에서 시대라는 공감대가 시작되고 있다. 겨울 끝 무렵, 한파가 오지만 봄으로 연결되는 지금.

차영일 장생포 아트스테이 문학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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