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 1차예선 관문서도
번번이 물먹는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
강박증 버리고 체계적으로 준비하자

▲ 홍영진 문화부장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번번이 좌초되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울산시는 지난해 12월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에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 우선등재 목록에 올려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서류가 미비하다며 지난 1월 결정을 보류했다. 그런데 지난 18일 다시 올라온 서류를 보고는 여전히 내용이 부족한 것 같다며 또다시 결정을 미뤘다.

울산시는 이 신청서류를 만들고자 TF팀을 만들고 세미나와 토론회, 학술용역까지 진행했는데 문화재위원들의 ‘보완’ 요구에 따라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정부는 유네스코에 신청하는 세계유산을 잠정목록, 우선등재목록, 등재신청 후보, 등재신청 대상 네 절차를 거쳐 정한다. 반구대 암각화가 포함된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은 그 중 첫번째 단계인 잠정목록에 올라있다. 2010년 1월에 올랐으니 제자리단계에서 무려 10년 세월을 보냈다. 세계유산으로 가는 길이 이처럼 험난하고 한층한층 단계를 오르려면 상상 이상의 치열한 경쟁과 수싸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 우리가 오르고자 하는 곳, ‘우선등재목록’은 사실 세계유산으로 가는 단계 중 ‘1차 예선’전에 불과하다.

세계유산이 되려면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이 자국의 대표 문화재를 가지고나와 1년에 한번씩 본선 경쟁을 펼치는데, 우선등재목록은 그 본선에 올릴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여러 국내 문화재(잠정목록·총 13건) 중 아주 조금 더 비중있게 다뤄지는 문화재인 것이다. 현재 우선등재목록에는 △서남해안 갯벌과 △가야고분군 2건이 올라있다.

우선등재목록에 올랐다해서 본선에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차 예선이 또 있다. 우선등재목록 중에서도 유네스코 본회의에 제출하기에 앞서 좀더 비중을 두는 문화재를 가려내는데, 그렇게 선정된 문화재에 비로소 등재신청 후보와 등재신청 대상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진다.

최근 이 단계에서 우리의 반구대 암각화와 똑같이 좌절을 맛본 문화재가 있다. 가야고분군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연말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본선에 올릴 것인가를 두고 논의하다 결국 7대1로 부결시켰다. 4년전 문재인 대통령 취임이후 가야사에 대한 관심도가 극에 달한 적이 있었다. 뒤늦게 ‘가야사’ 복원에 뛰어든 지자체가 무려 7곳이나 되는데 대통령의 관심사업인만큼 이 안건이 당연히 통과될 줄 알고 팡파르를 준비하다가 부결 소식을 듣게되자 이들 모두가 어제오늘 울산처럼 상실감에 빠졌다고 한다.

지나친 기대는 독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일, 이제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등재 준비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유산에 대한 온전성, 보존성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다. 아울러 지역 주민의 공감대 형성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제 아무리 좋은 일도 주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세계유산 지정이 곧 관광객 유입을 불러 와 그 일원에 일확천금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일 뿐 그 자체가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는 세계유산은 보존이 최우선이고 이를 잘 물려주는데 있다.

더불어 지자체장의 임기 내 결실을 거두려는 강박 역시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는 속도전만으로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긴 호흡을 가지고 바라보자는 이야기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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