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는 불법 정치자금 근절을 위해 개별 기업이 정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막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신 경제단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제3자가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기탁 받아 제공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반겨야할 얘기인데도 냉소적인 반응도 적지않다. 그동안 한 두번 들은 얘기도 아닌데다 당사자인 정치권이나 재계가 그동안 벌여온 일들이 미덥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법 선거자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이나 재계가 대응하는 방식은 매번 유사하다. 쉬쉬하면서 부인하다가, 증거가 하나 둘 드러나면 부분적으로 시인했다가, 문제가 커지면 대국민 사과를 한 후 실무자 몇 몇에게 책임을 지우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하는 식이 거의 공식화되어 왔다. 지금 재계나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이 벌이는 행위도 여전히 그 선에서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며 제 아무리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아도 많은 국민이 믿어주지를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몇 년 전부터 거론돼온 법인세 1%의 정치자금 기탁 방안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결국 법인세 1%를 기탁하는 것 외에도 별도로 정치자금를 내는 패턴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같은 "사회악"을 마냥 방치할 수만도 없다. 정치 자체의 부패 문제는 물론이고 기업 부실을 가져오고 기업간 공정 경쟁의 분위기를 훼손시키며 결국은 국민 부담과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암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근절시킬 방법은 이미 나올만큼 다 나왔다. 관건은 당사자인 정치권과 재계의 실천 의지, 그를 뒷받침하고 감시할 시스템의 철저한 가동이다. 정치권과 재계의 실천 의지는 여전히 믿을만한 수준이 못돼 보인다. 현재로선 완벽한 감시시스템을 구축하고 많은 투자가 필요하더라도 그 시스템을 완벽하게 가동하는 일 부터 서두를 수밖에 없다.

 전경련만이라도 우선 기업 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일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정치자금 제공방식 개선 등은 앞에 언급한 이유 등으로 헛일이 되기 십상이다. 경영이 투명해지면 외국인이 경영하는 기업들처럼 정치권이 손을 벌릴 틈이 없어진다. 그래야 기업들이 스스로 상납하거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놓거나, 또는 일방적으로 강탈당하는 불법 정치자금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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