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치료는 질환자 상황에 공감하고
동시에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주는 것
약물은 증상 개선에 도움주는 한 방법

▲ 정두영 UNIST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상담사가 정신과 진료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특정한 정신증상이 특정 정신질환을 의미하고 여기에 정확히 맞는 약이 존재하는가?’입니다. 그것을 알면 내담자에게 약물치료를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어서 힘들다고 호소하는 내담자의 말이 조현병 증상 중의 하나인 피해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심하면 망상 수준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피해사고나 망상이 있다고 다 조현병인 것도 아닙니다. 조울증, 우울증 등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좋은 상담자라면 그 생각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힘든 상황에 대해 공감해주면서 동시에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봐야겠죠. 그중에 약물이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약물치료를 권하는 기준은 어떻게 될까요? 증상이 심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거나 그 증상으로 인해 상담에 방해가 될 때를 기준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몸이 처져서 상담시간에 맞춰 오기 힘든 사람이라면 상담실에 찾아올 수 있도록 기운을 내주는 약물이 먼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증상이 심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오래된 문제이고 급격한 변화를 보인 것이 아니라면 위험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갑자기 나빠진 상태라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우니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상담사들도 약물의 종류에 대해 궁금합니다. 항정신병약(조현병약),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이런 이름을 들으면 뭔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나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저 이름들은 편하게 그룹을 짓기 위해 만든 것이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다양한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에 작용하는데 서로 겹치는 부분들도 있고 복잡합니다. 전문가에게 맡길 영역이죠. 실제로 항정신병약으로 분류되는 약이 우울증에 단독으로 사용되거나 어린아이의 틱 증상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가 인터넷에 약 이름만 찾아보고 놀라지 않도록 미리 설명합니다. 항우울제의 경우 불안을 많이 느끼는 강박증에 오히려 우울증보다 고용량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 복용하는 사람이 약에 대해 얼마나 알면 좋을까요? 답은 ‘그때 그때 다르다’입니다. 뇌를 전공하는 학생에게 기전을 설명해주면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고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아 힘들다는 환자에게 라벨에 적힌 모든 부작용을 설명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타이레놀에 적힌 부작용만 읽어봐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사람들에게 말이죠. 이런 경우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인 노시보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수치로 나오는 부작용이 아닌 경우, 불안한 마음을 통해 그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런 환자라면 그 불안한 마음을 돕기 위해 새로운 약을 시작할 경우 짧은 간격으로 만나서 함께 대응하자고 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에게 딱 맞는 설명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약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됩니다. 상담사 중에는 ‘약에 대해 직접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분도 계셨습니다. 내담자에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상담 장면에서 다뤄야 하는 것은 ‘왜 주치의에게 물어보는 것이 힘들까?’입니다. 계속 약속을 어기는 친구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을 상담을 통해 알아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를 도우려는 주치의에게 치료비를 내면서도 묻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만약 ‘진료실 예절’ 같은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시간’을 지키면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부작용이나 궁금한 점들을 설명하는데 헷갈려서 오래 걸린다면 키워드를 적어가도 됩니다. 오히려 주치의가 메모를 보고 그 상황에서 자주 들어온 질문들을 통해 속 시원하게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상담사는 힘들 때는 상담에 잘 오던 학생이 약을 먹고 금방 좋아지니 상담에 대한 열정이 떨어지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지 물어봅니다. 만약 내담자의 상담에 대한 욕구가 당장 힘든 것을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내적 성찰’이었다면 열정이 줄어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경험한 후 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내담자에게 필요한 것을 치료자와 충분히 나누었다면 증상이 호전되고 일상이 바빠져서 빠르게 상담을 종료했다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성찰’이 필요한 사람에게 약물로 일부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신 성장할 수 있도록, 상담실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대화가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두영 UNIST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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