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규상 천상고등학교 교사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블랙독’의 주인공 고하늘은 대치고의 기간제 교사이다. 수학여행 버스 전복 사고에서 자신을 구한 선생님을 잃고, 그때부터 그녀의 목표는 교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 서고자 했던 강한 동기가 있었기에, 고하늘은 기간제 교사이긴 하지만 교사가 된 자신을 대견해 하며 학기 시작 전 텅 빈 교실에서 두 주먹을 움켜쥐고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감격과 다짐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향해 학교는 기간제 교사임을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드러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동료 기간제 교사는 “이렇게 열심히 안 하셔도 돼요. 딱 중간. 그 정도만 해도 되지 않겠어요? 어차피 우린 떠날 건데.”라고 충고한다. 정교사들도 우리 모두 피곤해지니 적당히 하라며 수군거린다.

대학교 졸업 후 교사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서울 어느 중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었다. 지금처럼 교육청 인력풀 사이트가 구축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출퇴근 가능한 거리의 여러 학교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동그란 안경을 낀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용기 있다며 나를 뽑아 주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다. 그곳에서 나는 서툴렀지만 즐거웠다. 물론 한 해가 지나면 더는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 나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선생님, 여기 내년에도 계시나요?”라는 학부모의 물음에 선뜻 입을 떼지 못하는 고하늘의 마음도 그 시절 나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운 좋게도 시험에 합격해서 그 이듬해에 발령을 받았고 이십 년이 흘렀다. 이제는 맡은 업무 때문이기는 하지만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올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수학 1명, 체육 1명의 기간제 교사 채용 공고를 냈는데, 수학은 30명 가까이, 체육은 20명 가까이의 지원자가 원서를 내고 돌아갔다. 쟁쟁한 지원자들의 서류를 살피고 면접을 진행하고 순위를 매기는 나의 마음은 꽤나 힘들었다. 삼 년째 같은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 업무에 관한 한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또 다른 고하늘과 지해원인 그들에게 나서서 질문하지 못한다.

이야기가 좀 거창하게 흘렀다. 교원 수급 정책을 개선하라는 둥 기간제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둥 할 만큼의 깜냥은 나에게 없다. 다만 이십 년 전 시절을 떠올렸는데 여전한 지금의 모습은 씁쓸하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사용가치만 있는 존재. 아마도 그같은 생각이 드라마 속 3학년 부장 고영태가 수업 중 기간제 교사를 찾는 방송을 하고, 같은 교무실에서 일한다고 해도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며 큰소리치게 했을 것이다.

“선생님 저는 여전히 즐겁게 그 답을 찾고 있습니다.” 고하늘의 마지막 대사이다.

고하늘의 의도에 부합하는 답이든 그렇지 않은 답이든, 우리 모두가 아이들을 위한 답을 찾기 위해 준비하는 2월의 마지막 주가 힘겹게 흘러간다. 손규상 천상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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