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백제의 옛 땅 부여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만수산 무량사가 있다. 무량사 사천왕문에 들어서면 고려때 건립된 석등과 오층석탑이 마중이라도 하듯 반긴다. 조선 중기의 불교건축물 미륵전이 탑을 품고 있다. 무량사의 중심 불전인 2층의 극락전은 볼 때마다 그 장중함에 감탄을 자아낸다. 목숨을 셀 수 없고 지혜를 셀 수 없다는 곳, 즉 무량은 극락정토이다.

조선 최고의 지성이자 사상가였던 김시습은 불의와 타협하지 못해 세상을 등지고 전국을 떠돌았다. 그의 선구자적인 사상을 현실은 늘 외면했다. 오십대에 이르러 찾아 든 이곳 무량사에서 59세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설잠스님 김시습의 초상화가 있는 영각에 올라선다. 알 수 없는 표정인 초상화를 마주보며 천재여서 불행했던 그의 생을 한참이나 읽어 내린다. 하지만 황금기도 있었다. 경주의 금오산실(남산 용장사)에서 30대를 보내면서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시를 남겼다.

 

무량사에선 어디서나 오층석탑이 잘 보인다. 백제와 통일신라 양식을 잘 조화시켜 만든 고려 초기의 탑이다. 넓은 절 마당에서 석탑이 빛을 뿜어내는 것은 그 배경에 조선의 건축물인 극락전이 있기 때문이다. 백제와 통일신라, 고려와 조선의 불교가 이처럼 아름답게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보물 제185호인 무량사 오층석탑은 백제탑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아 우아하다. 통일신라의 형식을 이어받은 단정한 방형의 석탑은 고려 불교의 기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대를 앞서 갔기에 고독했던 김시습은 눈만 뜨면 보이는 높이 7.5m의 석탑을 바라보며 무량한 지혜를 갈구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하 수상한데 절집의 오래된 목련은 봄을 준비하고 있다. 꽃망울이 곧 터질 듯 봉긋하다. 오후의 탑 그림자가 길게 내 뒤를 따라온다. ‘그림자는 돌아다 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김시습의 시 한 구절을 되뇌며 그의 부도가 있는 언덕을 오른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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