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남구 옥동의 작은 식당. 홍우백 작가의 것으로 추정되는 100호 그림과 소장자 구철회 씨.

남구 옥동에 있는 작은 식당
대표 구철회씨 부인과 운영
식당 벽면 빼곡히 미술 작품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시초
故 홍우백 화백 그림 눈길
“잊혀진 화백…재평가 받길”

최근 문화도시울산포럼이 울산지역 5개 점포를 ‘아름다운 문화가게’로 선정했다. 그 중 한 곳인 ‘가을정류장’(남구 옥동)은 작은 규모 식당이지만 주인장 부부의 취향이 반영된 듯 식당 벽면 빼곡히 미술작품으로 채워져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결코 가볍게 흘려볼 수 없는 작품이 한 점 있다. 100호 크기 정물화다.

소장자인 구철회 대표는 이를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효시를 연 고(故) 홍우백(洪祐伯·1903~1982) 화백의 그림이라고 추정한다. ‘홍우백’에 대해서는 ‘한국 근대미술의 진정한 별’로 시대를 앞서갔으나 격변기를 거치며 잊혀지다 지금은 그 흔적마저 찾기 어려워진 ‘대가’라고 소개했다.

구 대표는 “누구의 그림인지 처음에는 몰랐으나, 2년 정도 연구하다보니 홍우백 화백의 그림이라는 확신을 갖게됐다. 최근 유족과도 만나 확인했다. 전문 갤러리에 두면 더 좋겠지만, 한국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가의 그림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가게에 두게 됐다”고 말했다.

홍우백은 조선미술전람회(1928년)에 ‘庭’(정)을 출품해 특선을 받았다. 이후 1944년까지 모두 14차례나 입상하며 명성을 얻는다. 당시 전람회 서양화 입선자는 대부분 일본 유학파였다. 오로지 국내에서만 교육을 받아 14회 입상한 건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1932년 입선작 靜勿圖(정물도)는 조선총독부가 직접 구매하기도 했다.

▲ 작품 속 사군자. 한자 ‘幽節呱芳’(우절고방)은 ‘그윽한 절개가 외로이 향기롭구나’라는 뜻.

그가 기록한 14회의 수상 기록은 역대 최다인 이인성(16회 수상)에 이어 2위(정현웅과 공동)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또다른 작가들과 비교하면 확연하다. 3위 박수근의 수상은 7회에 그친다. 나혜석(5회), 이마동(4회), 천경자(3회), 장욱진(2회), 이쾌대(1회)가 그 뒤를 잇고 있다.

1930년대부터 50년대 초까지 홍우백은 우리나라 최고의 장정, 삽화가로도 명성이 높아 노천명, 신석정 등 문인과의 교류도 잦았다. 그가 장정(도안, 색채 등의 겉모양을 꾸밈)을 맡은 몇몇 서적도 확인되고 유명 인쇄출판사의 로고도 만들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 마저 활동도 중단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클릭 한 번으로 보여주는 포털사이트 조차 ‘홍우백’에 대한 자료는 보여주지 않는다. 최근 정리된 ‘조선총독부관보활용시스템’을 통해 그의 눈부셨던 활약을 짐작할 수 있을 뿐 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연구한 논평이나 비평은 전무하다.

구 대표는 “홍 화백은 조선일보에서도 근무했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월북하면서 오해를 받은 것 같다. 퇴직 후 홍사백(洪思百)이라는 예명으로 잠시 활동했는데, 가게에 걸린 100호 유화도 예명만 적혀있다. 최근 3차례 유족과 만나 선친의 그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유족에게는 홍 화백이 1943년 금강산을 여행하며 그린 수채화 6점과 연필소묘 5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미술사에서 이대로 묻히기에 아까운 존재다. 한 점 남은 그의 그림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언제라도 그에 대한 전문적 재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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