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저지 위해 사투 벌이는 의료진
그들의 용기에 국민 전체가 부응해서
작은 욕구·불편 감내하는 사회윤리를

▲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지금 우리나라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 전쟁 중이다. 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전선이 어디인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인 집 안까지도 적은 침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적들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부족하여 효율적인 퇴치 작전을 수행하기도 힘들다. 또 자연의 질서 보다는 개인적인 믿음에 바탕을 두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전선을 끝없이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섭리를 앞세우는 종교인들이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예배를 계속한다고 한다. 한없이 약한 인간의 능력 보다는 절대자의 힘에 의지하여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끝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일이 194×년대 알제리의 작은 도시 오랑에서 일어났다.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이야기다. 쥐가 죽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전염병의 징후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의사 리유는 페스트균이 퍼지기 전에 병의 실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수차례 도청에 건의한다. 그러나 도청은 시민들의 동요와 불안을 걱정하여 미루다가 결국 도시를 봉쇄당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래도 시골의사 리유는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죽어가는 환자들을 묵묵히 돌보며 자기의 자리를 지킨다.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헌신적인 행동은 자신의 안위를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의문으로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도 신앙인 타루는 페스트와의 싸움은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리우의 고독한 싸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리유에게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자신은 신도 믿지 않으시면서 왜 그렇게 헌신적입니까?” 의사 리유의 대답은 지극히 단순하다.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버리겠다고.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신도 어쩌면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쳐다 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하여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른다고. 최근 끝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의사다.

소설과 드라마 속의 의사들이 우리 주위에서 실제 등장하고 있다. 대구의 부족한 의료인력을 돕기 위하여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스스로 대구전선으로 뛰어 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현장에서 어떤 일이 닥치는 지를 TV화면 앞에 앉아 있는 우리들 보다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우주복 같은 장비 속에서 견뎌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일상을 등지고 자기의 직업이 가진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사회 바탕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깊은 공동체의식과 사회윤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소설 페스트 속의 의사 리유는 패배할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도 페스트와의 싸움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에요.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 지, 이 일이 끝난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반성할 것이고, 또 나도 반성할 것입니다. 나는 힘이 미치는 데까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뿐이지요.”

전선이 따로 없는 이 전쟁은 모든 시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싸움임이 분명하다. 또 이 싸움은 한 사람의 일탈로 승패가 갈라지는 윤리와 도덕의 전쟁이다. 대구전선에 참여하는 의료진들의 용기를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을 작은 욕구와 불편함을 참아내는 지혜는 가져야 시민의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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