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옹기는 자가사용이 아닌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전통산업의 한 분야로 인정되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따라 기물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수제의 전통방식을 따랐고,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점차 공장체제로 방식을 전환하게 되었다.

옹기산업사에서 외고산 옹기마을은 ‘석고틀’을 활용하여 생산체제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손으로 흙을 빚어가면서 성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석고로 만든 틀에 흙을 넣어 찍어내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생산성을 높인 것이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국가는 경제개발에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했고,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과 근로조건에 대한 요구는 옹기업 종사 인력을 더욱 감축시켰다. 아파트라는 주거문화의 형성과 대체 용기의 보급이 옹기 수요를 감소시키기도 했지만, 전국 각지의 옹기점이 잇따라 폐업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물량은 외고산으로 집중되었다.

 

즉, 생산인력과 옹기 수요의 감소가 ‘석고틀’로 생산방식을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석고틀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에서 도입하여 산업적으로 사용되었다. 옹기산업에서도 생산성이 화두가 되었고, 마침내 외고산에서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뚜껑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적인 발전단계를 거쳐 항아리까지 생산하게 되었다.

항아리는 상하 2등분 된 석고틀에 흙을 넣어서 생옹기가 성형되면 상하를 접합하는 방법을 응용했다. 기술력에 따라 가마에서 나온 옹기가 다시 두동강이 나는 낭패를 보기도 했다.

석고틀은 한 번 제작하면 수명이 2~3년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생산량에 따라 석고틀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자가 마을에 상주하기도 했다. 석고틀은 외고산의 과거 산업 규모를 짐작하게 해 주는 지표나 다름없었다. 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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