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모 현대청운중학교 교사

학교 하면 뭐가 떠오를까? 아슬아슬한 등교시간, 준비물 사느라 붐비는 문방구, 왁자지껄 시끄럽지만 재미있는 교실, 역동적인 운동장, 짧은 쉬는 시간에 간식을 다 먹느라 애쓰는 매점, 들락날락 탈의실, 귀에 거슬리는 수업 종소리, 적당한 요령이 난무하는 청소시간, 담임의 잔소리, 교복과 체육복 등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이미지의 공통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북적북적’이 될 것이다. 학교에는 적게는 300명(물론 전교생 50명도 안되는 학교도 존재한다), 많게는 1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북적북적한 학교가 조금 낯선 장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조퇴하는 학생들의 눈에는 말이다. “왜 집에 가니? 무슨 일 있니?” 똑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을 10명 이상 보게 된다. 조퇴를 하고 집에 가는 길은 평소 하굣길과 많이 다르다. 문방구는 텅 비어 있고, 학교 밖에서 듣는 종소리는 은은하기까지 하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운동장은 그저 여유롭다. 버스에 자리가 남아돌고, 보관함에 있어야 할 휴대폰은 손에 들려있다. 이 쯤 되면 방금까지 아팠던 몸이 신기하게 낫는다! 병원가려고 조퇴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진다. 이것이 ‘조퇴의 기적’이다. 이건 학생뿐만 아니라 성인 직장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조퇴 또는 반차로 회사 출입문을 벗어나는 순간 아픔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동료들이 마음에 걸리고, 조퇴·반차를 허락해준 상사의 눈도 있으니 적당히 엄숙한 표정으로 끙끙대며 밖으로 나오지만, 거리에서 몸이 낫는다고 한다. 케빈 스페이시 주연 영화 ‘유쥬얼 서스펙트’의 카이저소제가 따로 없다.

다시 학교 얘기를 하자면 조퇴를 둘러싸고 학생과 교사의 두뇌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교생이 많으면 이 중에 아픈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조퇴증을 쥐고, 가방을 싸면 친구들의 시선은 연민이 아니라 부러움 그 자체이다. 교무실에 2탄, 3탄 환자가 찾아오고, 속칭 나이롱(?)을 가려내기 위해 교사는 학부모에게 전화하거나 “너 매점에서 빵 잘 먹던데?” “방금 수업시간에 잘 떠들어놓고 뭐?” 이처럼 물증을 제시한다. 학생은 코피를 틀어막은 휴지, 아픈 장면을 목격한 학생, 약봉지, 깁스 등을 보여주며 진실성을 주장한다. 이왕이면 반장처럼 신뢰도 높은 학생이 증인으로 등장하면 조퇴 성공률이 높다. 짧은 30초 동안에 창과 방패의 대결이자 검사, 변호사, 증인의 진실공방이 펼쳐진다.

조퇴학생 대부분은 아픈 게 맞고, 거짓 조퇴학생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런데 학창시절을 추억해보면 거짓조퇴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친구들에게 컨설팅 받아가며 아픈 연기를 연습한 후 담임에게 찾아갔지만 담임은 제보를 들은 터라 눈을 부라리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 멀쩡한 엄마를 조퇴에 이용해먹으려고 임종 직전의 중환자로 엮은 얘기, 점심시간에 조퇴하던 중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 차다가 조퇴 취소된 얘기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한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세대를 거쳐도 사람들을 재밌게 만들어주고,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이 또한 조퇴의 기적이자 조퇴의 위력이라 할 수 있겠다.

김경모 현대청운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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