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시커먼 돌 물고기 떼가 퍼덕퍼덕 산꼭대기로 뛰어 오르는 곳입니다.”

이십여 년 전, 답사모임의 길라잡이인 박 선생은 만어사를 오르는 길에 몸을 퍼덕이며 물고기 흉내를 냈다. 우리가 의아해 하자 “거짓말 아이시더” 얼굴까지 붉히며 흥분했었다. 그 박 선생은 가고 없는데 만어사를 오른다.

구름이 살짝 해를 가리자 너덜겅이 넓은 바다로 변한다. 미륵바위를 향해 돌덩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고 있어 마치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듯 장관을 이룬다. 전설은 저 멀리 가락국의 수로왕 때로 거슬러 오르고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도 너덜바위 이야기가 나온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간청하자 가다가 멈추는 곳이 그곳이다’ 이 명쾌한 답을 안고 길을 떠나니 수많은 물고기 떼가 그 뒤를 따랐다. 그가 멈춘 곳이 바로 이곳 만어사였다. 왕자는 큰 미륵돌로, 물고기들은 크고 작은 바윗돌로 변했다.

 

사람들은 이 전설을 따라 산 중턱에 걸린 절집을 오르고 바위를 두드리면 나는 범종소리에 끌려 모여든다. 삼국유사의 ‘어산불영 魚山佛影’을 확인하러 사시사철 몰려드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것은 절 마당의 삼층석탑이다. 보물 제466호로 고려중기인 1180년에 세워진 연대가 분명한 탑이다. 단층기단의 아담한 삼층석탑은 몸에 얽죽얽죽 온통 자국이다. 탑도 경석처럼 맑은 소리가 난다고 하여 돌로 친 흔적들이다. 생채기투성이의 탑이 안쓰러워 더 깊이 허리를 낮춘다. 불영(부처의 그림자)이 미치지 못했던 것일까.

석탑이 서 있는 마당에 서면 멀리 낙동강이 보이고 삼랑진읍과 들판이 보인다. 그 너머 겹겹산도 아스라이 펼쳐진다. 산수유 꽃도 흐드러지고 진달래도 피어 봄을 실감나게 하는데 마음 편하게 눈길을 줄 수가 없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저 멀리 마을을 내려다보니 괜히 서럽다. 지붕돌 모서리가 깨어져 나가고 온 몸에 멍이 든 삼층석탑도 서럽다. 서러운 봄이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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