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식 울산시교육청 비서실장

역병이 창궐하여 온 마을을 불사르고, 창검을 든 군졸들이 백성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아왔다. 의원들이 침과 탕약을 들고 병자를 살피는 한편, 위정자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의 지금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4차산업혁명 담론과 ‘코로나-19 팬데믹’의 부조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나로서는 없다.

인간 생명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의료인들을 무한 신뢰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간 인류가 쌓아올린 의학적 자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 댈’ 처지가 전혀 못 된다. 그러나 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빨리 만들지 못하지? 혹시 어떤 ‘의약 자본’이 이윤을 챙기기 위해 벌이고 있는 음모는 아닌가? 하는 등등의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생각조차 ‘가짜뉴스에 대한 미필적 동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저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으로 ‘밥 먹고’ 살았던 나는, ‘미국에서 공부한’ 교육 전문가들이 ‘바글바글한’ 대한민국 교육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입 대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시를 확대하고 내신의 비중을 줄이면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진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 없는 사실 아닌가? 교사들을 교원평가와 성과급으로 경쟁시키면서 학생에게는 협력과 공존을 가르치라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1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실업자가 되어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가는 ‘방중 비근무자’들이, 우리 미래세대에게 먹일 ‘밥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한가?

무상급식에 대해 포퓰리즘이니 퍼주기니 하며 머리 싸매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기본소득과 재난소득을 지급하라고 한다. 국가가 마스크를 공짜로 나눠주라고 핏대를 높인다. 격세지감이지만 ‘아름다운 주장’이다. 혁명이 별건가? 이게 혁명이다. 자본의 이윤이 아닌 시민의 생명과 삶을 우선하라는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혁명이다. 온 나라 온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에 떨게 되고 나서야 이런 주장을 하니, 미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상황이 잘 해결되고 나서도 ‘주워 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칭찬 한 그릇 남겨 둔다.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은 어떤가? 모든 학생 모든 교사가 ‘경쟁바이러스 확진자’가 아닌가? 이대로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는가? 경쟁에 기반을 둔 교육 정책에 발열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쟁을 부추기고 재생산하는 학벌과 입시 정책을 당장 ‘음압병상’에 입원시켜야 하지 않는가? 학벌에 따른 입금 격차를 없애고 대학을 평준화하며 ‘찍기 시험’을 없애고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야 하지 않는가?

그냥 주장일 뿐 현실성 없는 얘기라면, 누군가에게 현실성 있는 해결 방안을 듣고 싶다. 더 많은 ‘경쟁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오기 전에 ‘이 미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야’한다. 교육 혁명은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방관하고 숨는다면 우리는 공범이고 ‘교육신천지’일 수밖에 없다.

조용식 울산시교육청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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