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린 풍경-완도길, 장지에 먹, 분채 148×213cm, 2019.

우연히 펼친 미술잡지에서 ‘느린 풍경’이라는 단어가 시야에 꽂힌다. ‘느린 풍경’은 김선두의 창작세계를 요약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작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며, 본 것을 느낀 대로 그린다고 하기 보다는 그가 그리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에 가까운 것이다.

그의 ‘느린 풍경’ 시리즈에서 우리 삶의 속도는 자동차의 속도에 비유된다. <느린 풍경-완도길>에서 도로 반사경 안에는 2차선 도로와 그 주변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커버길에서 지나온 길과 지나갈 길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장치인 이 반사경 속의 풍경은 속도를 줄이면서 자세히 바라 볼 때만 보인다. 여기에서 자동차의 속도는 물리적 속도가 아니라 환경에 내맡겨진 성찰이 배제된 속도와 시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이 속도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속도라고 한다면, 이러한 속도에서 우리가 삶에 대한 진실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반성의 계기와 기회는 생기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작가는 ‘느린 풍경’ 시리즈에서 어떤 세계의 진실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유턴을 위해 잠시 멈춰 섰을 때이거나, 심하게 굽은 길에서 속도를 거의 줄일 때라고 말한다.

‘느림’과 ‘멈춤’을 감각과 인식의 환기를 위한 전위로 사용하면서, 앞과 뒤가 모두 보이는 부감시로 구성된 전경을 통해 우리에게 통찰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작가는 원인과 결과를 내포한 총체적인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계획했던 모든 일정이 연기되고 일상이 멈추어 선 지금, 이 시기가 어쩌면 우리에게는 통찰의 시간이 될 지도 모른다.

느리게 한 번 멈추어 갈 때, 자신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개개인이 더 성숙해진 사회구성원이 되어 제자리로 돌아 올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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