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영일 장생포 아트스테이 문학입주작가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도시는 봉쇄되고, 정부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전염병을 통제한다. 자비 없는 위협에 맞서는 시민은 혼란에 빠져 잔혹한 본성을 드러낸다. 야만화된 사회는 지속 불가능해 보인다. 이것은 전염병에 관련한 대부분의 영화나 문학작품에서 다뤄지는 서사다. 그리고 인류의 현재다.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인간을 밀어뜨리는 바이러스라는 공포는 동아시아를 지나 미국과 유럽, 남미까지 전 대륙에 전파됐다. 3월11일, 세계보건기구는 최고단계인 6단계 ‘코로나19 팬더믹’을 선언했다. 한국정부는 선제적이고 과민하게 대응했음에도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집단과 언론으로부터 방역에 실패했다는 십자포화의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검역하고 방역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진화 과정에서 신천지 사태라는 재난을 겪으면서도 도시를 봉쇄하지 않았고, 유럽으로 대확산이 되어도 국경을 막지 않았다.

3월17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코로나19에 허를 찔린 나라들에 중요한 모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민주적이고 규율 잡힌 한국사회, 코로나 대응 글로벌 모범사례’라고 한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투명성과 개방성, 적극성과 연대감이라는 민주주의의 강점을 다 드러내면서 환난과 국난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재난 서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공포와 대혼란으로 아귀다툼이 된 현장은 적어도 대한민국의 풍경은 아니다. 일부 정치집단과 언론이 공포와 불안이라는 정보전염병을 퍼트리고 정략적인 가짜뉴스를 살포해도 질서와 균형은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이동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투명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시민 모두가 차분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지난 신종플루와 메르스 사태 때 부재했던 재난 컨트롤타워를 자처하고 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정부와 시민의 식견이 혁신과 효율, 그리고 창의성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하면서 국가의 품격을 올려놓은 것이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가 ‘대규모 셧다운 없이도 확진자 숫자를 극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나라로 한국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러한 민주주의가 바탕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 이렇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범사례로 전 세계의 격찬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모두가 눈이 머는 전염병이 돌던 한 도시가 있다. 그 도시는 마치 모두가 눈이 멀어서 누구도 눈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는 옆 나라처럼 여겨진다. 눈이 멀지 않은 단 한 명의 시민은 전염병이 멈춘 도시로 돌아가면서 중얼거린다. “도시가 그곳에 그대로 있는지….”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소설처럼 인류는 광장과 학교가 있는 도시를 되찾을 것이다.

재난을 다루는 영화나 소설에서 평범했던 소시민은 우연한 소명을 통해 영웅이 된다. 대한민국은 ‘다 같이, 함께’ 라는 습관화된 민주주의라는 본성으로 시련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때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선언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바이러스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상식에 도전하며 신화를 써가고 있다. 모두가 말하는 대로 지금의 대한민국은 방역에 관한 한 표준화된 언어 그 자체다. 차영일 장생포 아트스테이 문학입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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