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가 가져온 ‘신 보릿고개’
허약해진 울산경제가 버텨줄까 걱정
맡은바 기본을 지키며 슬기롭게 넘자

▲ 신형욱 사회부장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최근 한 종편의 트롯경연대회에서 14살짜리 트롯신동 정동원이 불러 화제가 됐던 ‘보릿고개’ 가사다. 일제와 6·25의 폐허를 딛고 연명에 힘겨워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한 서린 노랫말이다. 이 가사의 여운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한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고소득군이 많은 울산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가사임에도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란 세계적 재난의 막막함과 우울함 탓이란 생각도 든다. 울산은 최근 수년새 주력 제조업 침체로 역성장해왔다. 수년 사이 3만명 이상이, 특히 젊은층의 탈울산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신종코로나는 울산에 심리적 보릿고개의 그늘을 더 짙게 한다.

줄서기는 일상화됐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실업급여나 고용유지지원금, 경영안정지원금 등을 받기 위해. 재난이 빈부를 가리지야 않겠지만 현실은 사회적약자가 더 고통받을 수밖에 없게 했다.

움츠린 생활 속 극약처방인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는 정(情)마저 끊어버릴까 염려스럽다. 신종코로나의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암울하다. 공포, 더 나아가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상이 당혹스럽다.

울산의 신종코로나 위세가 주춤한 것은 대구·경북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크 쓰기와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기본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뒷받침했다. 자칫 지역 내 집단감염 사례가 될뻔한 ‘이손요양병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7일 동생을 통해 이 병원 작업치료사가 신종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이 치료사는 하루 병원에 출근해 20명에 가까운 환자·동료 직원들과 접촉했다. 동료 2명이 미열 증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추가 확진자는 없었다. 모든 환자와 의료진 등에 대한 마스크 착용 의무화, 환자 보호자의 면회 제한 등 감염 차단을 위한 기본을 잘 지킨 덕택이다.

이런 사례도 있다. 지난 17일 본보의 인터뷰에 응한 울산 24번 확진자는 지난달 29일 조모상으로 대구의 한 장례식장을 방문했고, 지난 2일 오후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감염을 우려해 귀가하지 않고 셰어하우스를 구해 스스로 격리를 택했다. 외출이나 가족과의 접촉도 최소화한 덕분에 지난 6일 확진 판정에도 24번으로 인한 추가 감염자는 없었다. 장례식장 방문 이후 장기간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을 만나지 못한 고통을 감내하며 ‘배려와 기본’을 지켰기 때문이다.

신종코로나 사태를 두고 외신도 호평하는 방역 성공이라며 정부가 자화자찬하지만 씁스레하다. 드라이브스루 등 현장의 아이디어와 희생, 시민의식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방역은 그렇다 하더라도 코로나 사태의 지나친 확산을 막을 골든타임을 놓친 정부의 무사안일은 위태롭다. 정부가 의사협회 등의 권고를 받아들여 조기 중국인 입국금지만 했다면 지금의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감내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란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차단·통제라는 초기 감염병 기본 대응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란 목소리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보릿고개로 힘겨워하고 있는 울산은 코로나 이후가 더 걱정이다. 세계는 지금 코로나가 가져온 경제적 공포에 휩싸여있다.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져 있는 울산의 경제체질이 버텨줄지 걱정이다. 기존 병의 치료방법도 찾지 못했는데 코로나란 중증의 병균까지 겹친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울산이 회생 가능할까? 더욱이 울산의 컨트롤타워인 시정은 2018년 지방선거발 검란에 휩싸인 상황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을 지켜야 한다. 코로나 확산을 막은 울산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보릿고개를 넘어 다시 도약해야만 하는 울산을 위해 모두가 자기 맡은 바 기본을 생각해야 할 때다. 신형욱 사회부장 shi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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