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1986년 5월 물을 채운 회야댐은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중리, 신전, 신리와 웅촌면 통천리 등 4개 자연마을을 삼키고 있다.

 11월2일 오전, 신리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남원양씨 가족 50여명이 회야댐 인근에 있는 재실을 찾았다. 매년 음력 10월 둘째주 일요일로 정해진 묘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부산에 살고 있는 양승국(61)씨는 "댐에 마을이 잠기지 전까지만 해도 남원양가가 80여호 모여 살던 동네지만 오늘처럼 묘사를 지내거나 음력 7월 넷째주 일요일 벌초할 때, 집안 어른이 죽거나 자식이 결혼할 때가 아니면 친인척이 한 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며 고향을 잃은 아쉬움을 전했다.

 1610년 시조의 19세손인 양응진이 경기도 김포에서 신리마을로 내려와 자리를 잡은 이후 390여년 동안 청량면 신리마을을 지켜온 남원양씨들은 회야댐의 대부분을 차지한 중리마을(연안차씨 집성촌), 신전, 통천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동안 댐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평생을 농사만 지어온 농민들에게 논과 밭을 잃는 것은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청와대 상경투쟁을 위해 개개인이 정부의 눈을 피해 부산역까지 이동, 집결했다가 경찰에 이끌려 되돌아 오기도 했다.

 80년대 당시 정부 보상금은 논 1평당 7천~8천원. 현재 남구 옥동에 택지를 분양받기는 했으나 평생 일터였던 논밭을 잃고 옥동으로 이주할 형편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일부 주민들은 남에게 택지분양권을 팔고 가까운 청량면, 양산, 웅상, 무거동, 부산 등지로 이사를 떠났다.

 양승만 동덕여대 교수는 "정부 보상금이 현실에 맞게 지급된 것은 불과 수년 전으로 당시 보상금은 형편 없었다"며 당시 어려움을 회고했다.

 이날 묘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은 양씨들은 모두 회야강 징검다리를 건너고 험한 골짜리와 고개를 지나야 하는 청량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은 적령보다 한 살이 적거나 많은 아이들을 10여명 모아 한꺼번에 입학을 시켰다. 그래야 보다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52년에 청량초등학교를 졸업한 23회 동기들 가운데는 양씨가 11명이나 된다.

 웅촌에 살고 있는 양근석씨는 "비가 와서 큰물이 지면 학교에 못갔으며, 학교에 있을 때 홍수가 나면 선생님이 우리 마을 학생들을 제일 먼저 보내줬으나 그래도 안되면 신전마을에서 자야 했다"며 "지각대장도 많았는데 또래들이 우루루 학교에 가다보면 겨울에는 얼음을 타야 하고, 여름에는 물놀이 하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1980년에는 회야강 징검다리 위로 신리마을과 신전마을을 잇는 철석교(너비 5m, 길이 96m)가 생겼다. 신리 출신 재일교포 양철석(1920~1992)씨가 지역 주민을 위해 사재(당시 4천만원)를 털어 지은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웅촌면에 속했다가 청량면으로 편입된 신리마을은 다리가 생긴 이후 본격적으로 청량면을 생활권으로 하게 됐다. 지금은 회야댐에 잠기고 없는 철석교 근처에는 1979년 청량면장이 세운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지난 92년 작고한 양철석씨는 철석교 이외에도 1972년 마을회관, 1984년 청량면사무소를 지어 기증하기도 했다. 문중측에서는 또 1965년에는 울산시청 본관에 대형 시계탑을 기증했다고도 전했다.

 현재 남원양씨들이 해마다 조상에게 묘사를 지내는 재실 옆에는 효자묘와 쌍효각 1동이 있다. 효자묘와 쌍효각은 효자 양한신과 그의 동생 익신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20년 후손들이 축조한 것이다.

 울산 신리마을에 처음 발을 디딘 양응진의 후손은 전국에 약 300여세대. 현재 옥동에는 양반석(73)씨를 비롯해 약 10여가구가 동사무소 부근에 살고 있다. 9회 행정고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하고 부산·경남본부세관장을 거쳐 현재 한국관세협회 고문과 동덕여대 교수로 있는 승만씨와 양승태 SK증권 울산지점 차장, 양형모 공인회계사(삼일회계법인), 청량농협에 근무하는 승용씨, 재한통운 부산지사에 있는 정모씨, 의학박사 두호(부산 당감동 양두호 내과)씨, 서울 건축설계사무소 대표로 있는 원석씨도 신리마을 출신이다. 양승룡 국가정보원 부이사관, 양승렬 전주 청수병원 부원장, 양승완 삼성항공연구실과장(창원), 양재목 부산동의공업고등학교 교사, 양은정 부산배정여자중학교 교사, 현대미포조선의 양현모씨와 양승렬 울산대학교 중앙도서관 학술정보지원실 과장, (주)효성 온산탱크터미널에 근무하는 승탁씨도 신리마을이 고향이다. 박은정기자 musou@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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