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봉 사회부 차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1월20일 국내 첫 감염자가 발생한 뒤 두 달이 지나면서 감염자가 9000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도 100명을 넘었다.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감염에 대한 공포는 이제 경제 침체에 대한 공포로 급속도로 전이되면서 또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집 밖은 위험하다는 심리에 확진자 동선 공개에 따른 비난에 대한 부담까지 확산되면서 불필요한 외출은 철저히 자제하고 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으니 돈 쓸 일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자본이 넉넉지 않은 영세 자영업자를 시작으로 서민 경제의 근간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전국 여러 지자체가 재난기본소득 성격의 생활비 지원 방안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서민 경제의 추락을 막아 신종코로나 사태 종식 이후 시장이 되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저소득층의 생활안정 효과도 있겠지만 주 목적은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경제회생 기금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을 지원하자는 제안을 처음 했을 때만해도 ‘표퓰리즘’에 다름 아니라는 반대가 거셌다. 그러나 홍콩·대만이 이미 시행에 들어갔고, 일본과 호주 등이 준비 중이며 미국은 최대 1인당 2000달러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잇따르면서 조금씩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북 전주시가 처음으로 실업자와 비정규직 등 5만명 가량을 대상으로 52만여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역 은행의 체크카드 형태로 지급한 뒤 3개월 이내에 관내에서 모두 소비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어 경기도 화성시와 강원도, 제주도에 이어 서울시까지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도 이들 지자체의 움직임을 반기며, 지자체의 부담을 다음 추경에서 보전해주는 방안을 생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대해 선심성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재원 조달 방안이나 소비 진작 효과에 대한 검증 없이 무작정 시행에 들어가는 탓에 오히려 보유 중인 현금 지출을 억제하는 역효과를 불러와 투입 대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고사 중인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단순히 현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소비 유발로 인한 경기 부양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이는 재난기본소득이 소비 유발에 직결될 수 있다면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울주군이 전 군민을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군은 예산 사정이 넉넉한 만큼 재난기본소득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이는 울주군의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군은 예산 1조원 시대가 무너지고 세수도 지속 감소하면서 내년 필수 사업비 확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처지다. 그럼에도 서민 경제 붕괴를 위해 선제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충분히 가볼 만한 길이다. 비상 시국에 가본 길, 쉬운 길만 찾다간 목적지가 사라질 수도 있다. 비록 가보지 않았지만 가야할 길은 철저한 검토와 준비를 거쳐 가야 한다.

이춘봉 사회부 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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