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수현 중남초등학교 교사

우리 구영 마을에는 선바위에서 쭉 이어지는 강을 따라, 자전거도 탈 수 있고 천천히 걸으면서 운동도 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산책로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살짝살짝 올라오는 탄성 때문인지 걷는 운동이 살짝 재미있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뽀얗게 올라오는 예전의 오래된 흙길의 아쉬움도 생긴다.

거칠고 구불구불한 길, 한걸음 디딜 때마다 모래와 먼지의 구름이 일어나는 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 헬레나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에 소개된 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 라다크이다.

‘말을 백 마리 가진 사람이라도 채찍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라는 이 마을 사람들의 속담에서 알 수 있듯, 공존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생태적 지혜를 통해 오랜 기간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온 곳이다. 개인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의 이치보다는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공존의 문제가 최우선으로 생각되고, 돈을 좀 버는 것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다. 서로서로 마음을 상하거나 화를 내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는 라다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20년 현재, 우리 공동체는 ‘15일간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한 ‘잠시 멈춤’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공존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시작될 수 있게, 서로의 마음을 상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배려하는 <오래된 미래>의 지혜에서 책임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해 온 라다크 사람들의 아이들 양육 방식은 어떨까?

라다크 사람 그 누구도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가 책을 찢고 끊임없이 “이게 뭐야?”라고 물어도 절대 귀찮아하지 않는다. 라다크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무한대의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것 아니냐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라다크 아이들은 다섯 살 정도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게 된다. 심지어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업어주고 돌본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더 빨리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또래 집단한테서 떨어져 생활하는 일이 없이 성장하는 과정 내내 갓난아이에서부터 증조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둘러싼 공동체적 생활을 한다. 라다크 아이들은 사람들 사이의 주고받는 관계의 고리 속에서 자신이 그 한 부분이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2020년 우리 아이들은 작은 공동체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둘러싼 공동체 생활’이 모든 가정에서 가능하지 않은 현실이다. 개학이 늦어진 지금, 가족들 사이의 주고받는 관계의 끈을 단단히 묶고 서로를 포개고 보듬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친밀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감이 어떨까?

아이들이 햇살 가득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모습이 보고 싶은 시간이다. 비가 오면 질퍽해서 장화 신고 꾹꾹 눌리면 발자국이 남고, 마른 날씨엔 신발을 쭉쭉 끌어 흙먼지가 뿌옇게 나던 재미있던 흙길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임수현 중남초등학교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