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불안에 회사채 발행 힘들어
최근 대기업 은행권 대출잔액 증가세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온 대기업들이 3월 들어 이례적으로 은행권에서 돈을 구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회사채 등 자금시장 경색 조짐이 보이자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이전에 열어놓았던 한도대출에서 실제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전해진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이달 20일 현재 78조6731억원으로, 지난 2월 말보다 1조7819억원 늘었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늘어난 규모는 2월 한달간 증가액(7883억원)의 두배를 넘고, 1월 한달간 증가액(1조7399억원)보다 많다.

대기업이 통상 연말을 맞아 재무제표상 재무 건전성을 좋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대출을 줄였다가 이듬해 초 다시 늘리는 관행 탓에 일반적으로 1월에 대기업 대출이 많이 증가한다. 1월을 제외한 다른 달에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이 1조7000억원가량 늘어난 사례는 최근 2년 이내에 없었을 정도로 이례적이다.

대기업은 대개 회사채와 같은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탓에 꾸준히 대출 규모가 늘어나는 중소기업과 달리 대출 잔액이 일정 수준에서 증감을 거듭한다.

예컨대 5대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2018년 1월 74조3313억원에서 올 1월 73조8190억원으로 5123억원 줄었다. 2년 사이 변동률이 0.7%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은 385조4917억원에서 447조2475억원으로 16.0%(61조7558억원)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이달 들어 대기업 대출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전에 받아놓은 한도대출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이는 최근 대기업이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회사채도 투자자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어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온 대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특히 회사채 만기가 다달이 돌아오고 있어 회사채의 차환 발행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금융투자협회(금투협)에 따르면 다음달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6조5495억원으로, 금투협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1년 이래 4월 기준 역대 최대 물량이다. 4월을 포함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38조3720억원이다. 회사들이 차환 발행으로 회사채 만기를 연장할 수 없다면 현금을 마련해 채권 보유자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정부가 10조원 이상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에 나서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들어 차환 발행이 어려워 대출을 물어보는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며 “회사채 금리가 떨어져 투자 매력이 없어진 점도 회사채 차환 발행이 어려워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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