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병용 농협중앙회 울산지역본부 본부장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은 될 수 있지만, 농업·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쿠즈네츠 하버드대 교수의 말이다. 농업선진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이며,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G20에도 속해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이며, 무역규모는 1조1443억 달러로 세계 무역량의 2.9%를 차지해 선진국 기준(0.5%)보다 훨씬 높다. 수치만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려한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업은 아직 선진국의 달콤한 과실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농가소득은 오랜 기간 정체되다 2018년 들어서야 기지개를 켰다. 4206만6000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4000만원대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65.5%에 머무르고 있는 데다 양극화가 진행되어 농가 간 소득격차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농민수당 같은 공적보조를 통해 농가소득을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민수당은 농촌문제를 해결하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취지로 농민에게 일정금액을 보상하는 제도다. 지난해 해남군에서 처음 지급되기 시작한 뒤 전국 200여 곳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로 확산되고 있다. 농민수당 도입은 정책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필수 과제라 생각하며 그 이유에 대해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농민수당은 산업화·개방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의 기본적 생존권 보장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시장개방으로 농민이 가장 큰 피해를 받아왔고, 농업 경쟁력은 매우 낮아졌다. 농촌 인구의 이탈과 고령화, 농가 소득의 감소로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농민수당은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농민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농가소득의 ‘마지노선’이다.

둘째, 농민수당은 농업·농촌의 다원적인 가치와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수당을 지급받는 농가는 논밭 기능유지, 화학비료와 농약의 적정사용 등의 생태계 보존과 마을공동체 활동 참여, 전통문화 보존 같은 책무를 부여받게 된다.

셋째, 농민수당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수당을 울산페이 등 지역화폐나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면 지역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고, 비농업계를 중심으로 한 ‘형평성’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영농규모가 작은 고령농과 영세농의 소득증대에도 도움이 되어 농촌경제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의미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중소농 보호 육성 및 안정적인 영농활동 지원, 농업의 공익적 가치 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지원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률 제정 및 예산 확충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고, 올해도 강원, 충남, 전북, 전남 등 도 단위 도입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농가기본소득 안전망 구축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농민수당 도입 확대는 관련 예산이 수반되기에 재정 부담이 있을 수 있고, 지자체 간 재정 건전성의 격차가 있기에 세부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 농민들의 소망은 단순하다. ‘땅은 거짓말을 안한다’는 말을 믿고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태풍에 농작물이 휩쓸려나가기 일쑤고, 과잉생산 때는 판로가 막히고 값이 폭락해 생산비도 못 건진다. 흉년이 들어 가격이 오르는 것이 정상인데, 수입 농산물이 그 자리를 대신해 농민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제는 농업을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재로 바라봐야 한다. 다행히 올해는 공익형 직불제가 시행되고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이들 제도가 앞으로 보완을 거듭해 힘없는 농민들의 자긍심을 세워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문병용 농협중앙회 울산지역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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