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10번째 시집 발간
노동의 가치·인간존재 근원
특유의 깊은 사유로 펼쳐내

 

한국 노동시를 대표하는 백무산 (사진) 시인이 새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창비)를 냈다. 5년 만에 나온, 시인에겐 10번째 시집이다.

백 시인은 여전히 노동하는 삶의 가치와 인간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는 웅숭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친다. 치열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과 시대상을 침통한 눈으로 응시하는 고백록’(고영직, 해설)과도 같은 묵직한 시편들로 읽는이에게 서늘한 감동을 안겨준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올 필요 없답니다 민주화가 되었답니다/ 민주화되었으니 흔들지 말랍니다/ 민주 정부 되었으니 전화하지 말랍니다/ 민주화되었으니 개소리하지 말랍니다//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겨울비 온다/ 어깨에 머리에 찬비 내린다 배가 고파온다/ 이제 나도 저기 젖은 겨울나무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시 ‘겨울비’ 일부

▲ 백무산 (사진) 시인

시인은 위선적인 현실 정치와 새로운 강자들의 언행에 냉소적 감수성을 보인다. 하지만 허무하거나 퇴폐적인 냉소에 그치지는 않는다. 피폐해지고 고단한 현실을 잠시 숨돌리고 가는 ‘정지의 힘’으로 극복하자고 설득한다. ‘멈춤’이야말로 반복되는 폭력적 일상에 저항해 우리가 본래 소유했던 자연적 감각을 되찾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시 ‘정지의 힘’ 일부

백 시인은 저자의 말에서 “내가 있는 곳은 변방이다. 야생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찌꺼기가 훨씬 더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시가 나에게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억압된 현실을 마주해서 찌꺼기들을 재료로 무슨 연금술이라도 부려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빛나는 무엇이 아니라, 금을 똥으로 만드는 뒤집힌 연금술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삶에 밀착되어 다가 올 시대를 예감하는 그의 시를 두고 신철규 시인은 추천사에서 ‘현란하고 뒤틀린 언어들을 비집고 나오는 사람의 말’이라고 했다.

백무산 시인은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로 일했고 1984년 무크지 ‘민중시’를 통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울산작가회의 회원으로서 창작활동과 문학강론에 참여하고 있다.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오장환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대산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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