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1일은 마틴 루터가 1517년에 "면죄부에 관한 95개 논제"를 붙여 온 유럽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날이다. 돈에 대한 교회의 무절제와 면죄부 판매행위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공개 반박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돈에 대한 정치권의 무절제와 사면에 대한 격렬한 공방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 대선자금 비리는 여자 연예인들의 누드 열풍이나 스와핑처럼 도덕적 가치가 허물어지고 있는 사회적 혼란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즉 정치, 경제, 도덕 등 사회적 규범이 자제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이상상태의 신호이다.

 이런 사회적 혼돈은 근본적으로 공의(公義)가 구현되면 저절로 정돈이 된다. 그리고 이 책임은 정치가 풀어야 하는 몫인데도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는 여야가 따로 없이 무엇을 치(治)하는지 알 수 없고, 오직 "검은 뭉칫돈"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가히 혼돈상태(anomie)이다.

 이런 정치판에도 느닷없이 누드 바람이 불고 있다. 얼마 전부터 정치인의 입에서 "정치인들 모두 법 앞에 옷을 벗자", "과거 벗고 가자"는 "벗자"소리가 솔솔 새어 나온다. 이 "정신적인 옷 벗기"는 대선자금을 고해성사하고 사면을 받자는 계산이 깔린 듯한데, 얼굴 두껍기는 구두창 같고 양심은 종잇장 같은 얄팍한 수작으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 안쓰럽다.

 고해성사란 스스로의 허약한 영혼을 보속(補贖)함으로써 죄의 종교적 용서를 비는 성사(聖事)이지 그 잠벌(暫罰)까지를 용서받는 면죄의 의례가 아니다. 끝없는 사랑과 관용으로 감싸는 종교에서조차 그렇거늘 하물며 불법모금의 온상인 선거판이 아닌가. 그래서 고해와 사면을 정치적으로 뭉뚱그리려는 발상은 또 하나의 범죄적 음모다.

 고해라고 하기조차 부끄럽지만 고백이라 하더라도 법적 책임은 따로 지고, 정계를 떠나는 선언이 아니면 동물원 원숭이의 흉내나 입에 발린 거짓말에 불과하다. 고해든 고백이든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죄를 피하기 위한 술책이라면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여론 때문에 "고해-사면"이 잠시 숨은 듯하지만 "만델라 식"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면 정치인들이 속내는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보인다. 남아공의 화해위원회는 정치적 피압박자가 가해자를 용서·포용하는 화해정책인데 대선자금 불법모금은 파렴치 범죄로 비교는 무슨 비교며, 누가 누구를 용서·화해한단 말인가. 가해자들끼리 서로 용서, 사면하자니 겁도 없고 가당찮다.

 대선자금이 사면을 받아야 한다면 중소선(中小選)자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작은 것은 잡고 큰 것은 잡지 않는 법과 고해로 죄를 다스리는 사법제도가 생겼는가. 그렇다면 "모든 교도소 수감자에게도 고해성사를 시키고 사면해야 하지 않는가?" 틀림없이 "그것은 안 된다"라고 할 것이다. 바로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되는" 이 눈금이 다른 잣대가 정치 권력자들의 오만과 횡포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무한의 도덕성과 정직성, 그리고 최고의 법적 책임을 요구받는 직이다. 불법주차는 견인되어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대선자금은 고해성사로 끝내자는 발상은 정신병적이거나 독재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정신으로 하는 소리 같지 않고, 자기들 손으로 지은 죄를 스스로들이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초법적인 협박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정치자금 파문이 일때마다 제도를 탓하지만 그것이 어찌 제도만이 뒤집어 써야할 탓인가. 인적청산 없는 제도 바꾸기로만은 백년하청이다. 또 당리를 위해서는 죽기 살기로 싸우던 여야가 정치자금 파문 앞에서는 야합하는 모습은 추악하다.

 만에 하나 정치권의 암묵이든 아니든 "대선자금 고해성사 사면 정치자금 특별법(?)"같은 쿠데타적 음모를 꾸민다면 이름만큼이나 긴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죽을 각오를 해야 살 길이 보이지, 살 욕심만 부리면 반드시 제 꾀에 넘어가는 법이다.

 그리고 정치판의 이와 같은 부패와 오만에는 국민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을 국민 스스로가 이제는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유권자가 후보자를 잘못 선택하거나 쉽게 용서하여 정상배를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어리석음을 누구에게 원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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