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 축일인 위령(慰靈)의 날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순례객들에게 "죽음의 신비를 운명의 마지막 단어가 아닌 영생(永生)으로의 여행으로 간주하라"고 말한 뒤 사랑하는 이들의 무덤가에서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파킨스 병을 앓고 있는 교황이 휠체어에 의존, 연설도중 숨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낀다.

 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세대를 이어온 인간사에서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천수를 다한 죽음은 다음 세대와의 연결을 의미하기에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죽음은 남는 자를 더욱 애통하게 한다.

 안쓰러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 집회에서 분신을 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이용석(32)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광주본부장이 끝내 숨졌다.

 회사측에 성실교섭을 촉구하며 대형크레인에서 고공 농성을 벌여오던 한진중공업 김주익(40) 노조위원장이 자살했다. 울산에서도 모 회사 노동조합 사무국장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반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또 카드빚을 견디지 못한 주부, 고참의 괴롭힘에 시달린 전투경찰 등의 자살도 이어지고 있다. 가정불화로 부부싸움을 하다 음독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장애로 고생하는 아들과 함께 음독자살을 기도한 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 동반자살 등 갖가지 사연을 담은 자살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 주부 45%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12.3%가 자살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한 조사결과 나타났다. 대한우울·조울병학회가 서울시내 20~60세 주부 1천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유병률을 분석한 결과 세계평균(25%)의 2배 수준인 45%로 집계됐다. 특히 조사대상 주부의 12.3%는 한 차례 이상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나이대별로는 30대 주부의 우울증이 6.4%로 가장 심했으며 다음으로 50대(5.6%), 40대(3.2%) 등의 순이었다. 심각한 우울증 환자의 15%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에 비춰볼 때 일반주부들 중 12.3%가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고도의 자살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청소년층에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모대학에서 수도권지역 중고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90명중 8.2%가 자살관련사이트를 검색, 이중 6% 이상이 자살충동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층의 자살은 다음 세대의 단절을 불러올 수 있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살의 원인이 개인적 심리문제보다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파생되는 불안심리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개인의 자살보다는 사회적 타살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부진한 협상과 파업조합원에 대한 임금가압류, 손배소, 노조간부에 대한 사전체포영장발부, 조합원들의 이탈 등에 따른 압박감때문이라는 노조위원장의 자살동기나 가장의 직장불안과 가정경제의 압박, 자녀교육 등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상대적으로 많아 30대 주부의 자살율이 높다는 분석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사회적편견과 개인이 안고가야할 짐을 이기지 못하고 장애아들과 함께 자살을 시도한 부정도 마찬가지다.

 선택의 결과를 알고도 자신의 몸을 내 던지는 자살로 내모는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는 애통할 수 밖에 없는 잇따른 죽음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gij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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