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사사성장寺寺星張 탑탑안행塔塔雁行 ‘절은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은 기러기 떼 줄지어 날아가듯 하다’ 삼국유사는 서라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절의 대부분이 남산자락에 있었다. 바위산인 남산은 석불상과 석탑을 세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자신들이 사는 땅이 부처의 나라인 불국토라고 믿은 신라인들은 그 염원을 탑과 불상으로 재현했다.

남산자락의 폐사지에는 근래에 복원된 탑이 많다. 그중 늠비봉 정상에 오층석탑이 있다. 경주 시내와 너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다. 높은 산을 기단삼아 정연한 늠비봉 오층석탑 앞에 서면 허공을 밟고 선 듯 어지럽다. 오랜 등반 경력을 자랑하는 산꾼은 보름달이 뜨면 남산을 오른다. 밤중에 늑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오층석탑은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고 한다. 보름밤에 봐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나를 부추긴다. 용기가 나지 않아 오늘도 해가 쨍쨍한 낮에 늠비봉을 오른다. 기막히게 아름다워 캄캄한 밤에 찾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복원된 탑이라는 이유로 안내판도 하나 없다. 늑대의 눈이 아니라 아둔한 내 눈으로 바라봐도 탑은 하늘과 맞닿아 도리천에 오르는 듯하다.

 

늠비봉 탑은 신라 땅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서라벌로 들어 온 백제 석공의 솜씨가 틀림없다. 그는 두고 온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이 높은 곳에 탑을 조성했을 것이다. 백제탑을 닮은 오층석탑은 대부분의 석재가 소실되어서 새로운 돌을 많이 다듬어 올렸다. 9세기 말에 만들어진 이 탑의 특징은 기단이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 모양에 맞추어 맞물리게 쌓는 그랭이 공법을 이용했다. 그 자연스러움이 좋아서 손으로 쓸어보고 슬쩍 한쪽 어깨를 기대어 보며 한참을 동무한다.

탑을 돌아서 내려오는데 깨어진 석재의 틈을 비집고 진달래 봉오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밖에 없다. 주저앉아 한참을 내려다보며 ‘기특하다 기특하다’ 몇 번이고 눈을 맞춘다. 생명의 힘은 갸륵하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