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걷다보면 삶의 활력 되찾게 돼
불황에 코로나에 지친 심신 달래줄
나만의 ‘회복처’서 난제의 답 찾길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매일매일이 단조로워 주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아 심장이 무너질 때, 혹은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퀘렌시아를 찾아야 할 때이다….’(류시화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투우사와 혈전을 벌이는 소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고 한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가 자신이 스스로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는 곳.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 찾는 곳이 바로 ‘퀘렌시아(Querencia)’이다. 그야말로 ‘회복’하는 곳이다.

숲길 2㎞를 30분 정도 걸으면 긴장, 우울, 분노가 줄어들고 인지 능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숲에 가서 기운을 흠뻑 적시고 오는 날이면 무언가 충만한 에너지와 열정을 선물로 받은 느낌이다. 푸르고 울창한 숲에서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배 이상 건강하고, 비만을 포함한 만성질환이 40%까지 감소된다고 한다.

필자도 숲을 좋아한다. 내밀한 숲의 고요를 즐긴다. 어린 시절 숲 속 탄광촌에서 살아서일까. 보통 군부대는 대부분 산 부근에 있는데 대대장으로 근무할 때는 첩첩산중 계곡이 흐르는 심산유곡에 부대가 있었다. 관사를 나서면 바로 울창한 숲이고, 나무들이 보인다. 부대 울타리가 따로 없었다. 산 자체가 울타리였다. 어렸던 우리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신나게 놀았다. 지금도 그때가 좋았다고들 말한다. 전역 후에는 도시 생활로 바뀜에 따라 미세먼지 가운데서 살고 있다. 정화가 덜 된 지하철 공기에도 적응되어 간다. 가끔 아파트 주변 오래된 나무 그늘 벤치에서 30분 정도만 쉬고 있어도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상큼해진다. 소령 때 미국 시애틀 부근에 있는 미 1군단에 훈련 갔다가 레이니언산(4392m) 국립공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원시림 그대로 살아있고 웅장한 숲의 너른 품에 압도당했다. 심지어 말이 다니는 전용 길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70% 이상이 산림이다. 한라산, 설악산 등 국립공원을 포함하여 곳곳에 아기자기 아름다운 숲이 넘쳐난다. 이국적인 제주 해변 올레 숲길도 있다. 여행지에서 숲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시간이 날 때면 숲이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잠시 나무들과 대화를 나눈다. 한 그루 나무나 풀, 이끼 등 생명체, 만물의 영장 인간도 모두 유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유전자란 그 생물체를 만드는 방법을 표준 알파벳으로 기록한 암호 메시지다. 모든 동물, 식물, 세균의 유전자가 알파벳 A, T, C, G 넷 중 하나로 구성되어 있단다.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 수 만 년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공통 선조를 갖는다. 모두 서로 먼 친척이 되는 셈이다. 숲속 나무들이 오래된 친구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포근함을 갖춘 배려 있는 넉넉한 친구.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고약스러운 코로나가 빨리 사라졌으면…” “딸이 골프시합에 나갔는데…” “오늘 좋은 사람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혼자 중얼거리고 나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숲은 나의 퀘렌시아다.

미국 동부지역 체로키 인디언들도 살다가 고난이 닥치거나 힘들면 숲 속으로 자신이 정해둔 나무를 찾아가 교감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만지고, 껴안고, 기대면서 한나절씩 나무와 지낸다고 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대사처럼 희망을 안고, 집이든 숲이든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서 피곤한 심신을 다시 회복할 때이다.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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