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농촌마을에서 본 작은 예배당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잇는 소통의 공간
편협한 논리 없어도 참 신앙심 끌어내

▲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육십이 넘도록 믿고 의지할 신앙 하나를 얻지 못하고 살아왔다. 절대자에 의지 하지 않고도 평생을 올곧게 살아 낼 수 있는 강인한 자아를 가져서가 아니었다. 일상을 지배하는 자잘한 불안들을 담대하게 넘어설 수 있는 깨달음을 얻어서도 아니었다.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예배하고 기도하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넘쳐나는 말들과 의례에 적응하고 감동하지 못하는 메마른 감성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인간적인 교만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번 교회와 산사를 찾아가서 손을 모으고 절을 올려 보기도 했으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신앙을 얻지는 못했다. 은총이 부족하고 인연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고 흔들리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 신을 부르지는 않고 살았다. 나에게는 성스러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영혼의 힘이 부족하다고 단정하면서.

그러나 세속을 벗어나 성스러움을 느끼면서 전율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몸으로 사는 한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 지난해 독일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도시와 거리가 먼 오래된 농촌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방이 끝없는 밭으로 둘러싸인 중세풍의 마을이었다. 마을 중심에 있는 공동시설이라고는 직원이 한명 뿐인 빵집과 작은 교회가 전부였다. 하는 수 없이 볼품없는 교회라도 보고가야 할 것 같아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 때 할아버지 한 분이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교회 옆 공동묘지에서 풀을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교회를 가리키면서 꼭 들어가 보고 가라는 것이다. 낮선 동양인에게 이 마을에 왔으니 마을사람들이 묻혀 있는 교회에 들어가 인사라도 하라고 권하는 것 같았다.

마지못해 들어간 교회에서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한자리에 서있었던 것 같다. 너무나 소박하고 편안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굴복하여 결국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호가 교회의 의식에 맞는 행동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 순간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유럽의 웅장한 교회를 수없이 찾았어도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작은 교회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자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생활 속에서 기억하고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교회와 함께 있는 공동묘지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그 곳에서는 산 자들에게 영생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목사도 신에게 영생을 구하는 신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죽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공간에서 어찌 영생을 구하고 약속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과장과 위압도 없이 삶과 죽음을 이어주고 있는 그 작은 교회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 주위에서 육신의 영생을 구하기 위해 일상을 포기하면서 예배당으로 모여든다는 소식을 접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교를 가져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종교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신앙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신앙의 싹은 어릴 때 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땅위에서 인간이 만들어 온 삶의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종교가 건강한 사회 속에서 오래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예언을 교리로 삼는 신앙이 어떤 결과에 도달하는 지는 지난 역사를 조금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인간의 본성에서 신앙심을 이끌어 내기보다 편협한 논리를 앞세워 사람들을 예배당으로 모으는 종교인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어디엔가는 독일 농촌 마을에서 본 작은 예배당이 있을 것이다. 한번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싶다.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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