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 사태 속 생계난으로

▲ 8일 오전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어린이 등 2명이 숨졌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내부. 울산시소방본부 제공

신종코로나 사태 속 생계난으로
식당·타지역 생활 부모 대신해
9살 어린 동생 살뜰히 챙기던 형
새벽에 편의점 다녀오는새 화재
외출전 켜둔 향초, 화재원인 추정
스프링클러 설치 안돼 피해 키워

“최초 신고가 오전 4시6분에 접수됐습니다. 그리고 불과 6분 뒤인 12분에 추락했다는 신고가 추가로 접수됐죠. 불과 6분이요, 6분.”

화재와 추락까지, 형제의 참변은 불과 10여분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졌다. 신종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부모의 보살핌 속에 학교를 다니며 건강하게 생활했을 안타까운 형제의 죽음에 경찰은 비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8일 오전 4시6분께 울산 동구 전하동 한 아파트 1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18살 형과 9살 동생이 함께 숨지고 주민 8명이 연기를 흡입해 치료를 받았다.

형인 A군이 집을 나서는 모습이 엘리베이터 CCTV에 잡힌건 오전 3시59분. 친구 C(18)군과 함께 집에서 불과 150m 떨어진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산 이들은 집으로 걸어오다 창문가에 일렁이는 붉은 기운을 발견했다. A군의 모습이 다시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에 잡힌 시간은 4시5분. 몸이 불편한 동생을 구하기 위해 A군은 불길이 이글거리는 집으로 뛰어들었다.

소방본부 상황실에 최초 신고가 접수된 건 오전 4시6분. C군이 신고했다. 그리고 6분여 뒤인 12분께 사람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추가로 접수됐다. 동생을 구하러 화마 속으로 뛰어든 A군이 불길을 피해 베란다 난간에 매달렸다가 추락하고 만 것이다. 동생 B군 역시 불길을 피하지 못한 채 베란다 인근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A군과 C군이 새벽에 라면을 끓여먹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식탁위에 초를 켜고 창문을 열어둔 채 나간 사이에 바람에 초가 넘어지며 불이 난 것으로 추정중이다. 소방당국은 창문을 열어둔 탓에 불길이 더 빠르게 번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형제의 부모는 생업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영업 준비를 위해 가게에 있었고, 어머니는 경주에 있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뇌수술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전해진 B군은 지난해 경북의 한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고, 어머니가 경주에 자리를 잡고 아이를 돌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종코로나로 휴교를 하면서 경주에 직장을 잡은 어머니는 경주에 남고 B군만 최근 울산으로 내려와 형과 함께 지냈다.

아버지 역시 식당을 운영했으나 신종코로나로 손님이 줄어들자 투잡을 뛰며 식당에서 자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 이웃들은 A군이 평소 동생을 살뜰히 챙겼다고 한다. 김모씨는 “집에 불났는데 동생 구하러 뛰어들어가는게 보통 일이냐? 그만큼 평소에도 동생을 살뜰히 챙겼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화재로 가구 등이 타면서 아파트 전체가 매캐한 연기로 휩싸여 주민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출동한 소방대에 의해 집 안에 고립돼 있던 인근 주민 11명이 구조됐다.

화재가 발생한 13층 인근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화재 비상벨 소리를 전혀 못들었다. ‘살려달라’는 비명소리에 깨서 보니 매캐한 냄새가 올라와 화재가 난 걸 알았고 곧장 옥상으로 도망쳤지만 옥상문도 잠겨있어 결국 맞은편 집으로 대피했다”고 위급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동부소방서 측은 소방시설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 중이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화재가 더 빨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이 아파트는 지난 1997년 준공된 15층짜리 건물로, 당시 규정상 16층 이상만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돼 아파트 전체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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