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②

▲ 높이 48m, 둘레 500m 매머드 경기장인 콜로세움은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 해전이 가능한 경기장과 지하구조 그리고 천막으로 지붕까지 덮었다. 불가사의한 건축기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수원지에서 도시로 물 대는 수도교
경이로운 메머드 구조물 콜로세움
기둥없이 돌쌓은 반원형 아치 사용
볼트·돔으로 발전한 로마건축의 미학
한국 목구조의 품격도 그에 못잖아

최소한 유럽 건축역사에 있어서 로마가 그리스의 계승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인들이 테베강 유역에 도시국가를 만들기 이전부터 이탈리아 남부에는 그리스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스문명의 습합(習合)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리스 신들이 살던 신전에 이름만 로마식으로 개명한 그리스 신들이 봉안되었고, 건물들은 기단과 기둥과 삼각형 박공지붕으로 구성된 입면으로 디자인되었다. 그리스인들이 개발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기둥양식들도 거의 그대로 재현되었다. 도대체 로마다운 것은 무엇일까?

로마건축의 특성은 주로 공공건축에서 발현된다. 수도교, 로마인들이 만든 도시를 특징짓는 가장 인상적인 시설이다. 그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도시외곽의 먼 수원지로부터 도시 안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도교를 만들기 시작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물은 도시의 생명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안전한 장소라도 물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깨끗한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장소라야 지속적인 도시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로마인만큼 일찍부터 탁월한 수자원관리체제를 구축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수도교를 통해 흘러든 물은 시민의 식수가 되고, 공중화장실과 공중목욕탕에 정화수로 공급되고, 정원의 식물을 키우고, 분수를 만들게 했다. 사용하고 남은 물들은 하수도를 통해 흘러 나가면서 오수와 폐수를 배출하게 했다. 깨끗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물 관리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평균수명 72세, 중세시기의 두 배가 넘는 건강한 도시는 위생적인 물 관리 체제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스페인 세고비아에서 마주쳤던 거대한 수도교의 충격은 로마 성벽 밖에서도 만날 수 있다. 돌을 쌓아 만든 2층의 다리, 그것은 들판을 가로지르고, 강과 계곡을 넘어 도시로 이어지는 물길이다. 여기에는 에트루리아 인에게 배운 ‘아치(arch)’가 사용되었다. 아치는 기둥 없이 반원형으로 돌을 쌓아 상부의 하중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구조기법이다. 비록 자신들이 창안한 것은 아니지만 로마인들만큼 아치를 적재적소에 적용한 민족도 드물 것이다.

콜로세움. 그 거대한 구조물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실은 아치를 활용한 덕이다. 이 건물은 역사적으로 검투사들의 혈투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참혹한 박해의 현장으로 알려진 한편, 경이로운 건축규모와 기술로 찬양되는 양면적 얼굴을 갖는다. 건축적으로는 4층으로 구성된 높이 48m, 둘레 500m의 대형 매머드 스타디움으로 기록된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 해전이 가능한 경기장과 지하구조, 그리고 천막으로 지붕까지 덮었다는 점은 불가사의한 건축기술의 경지를 증언한다. 오늘날의 첨단 공학기술로도 쉽지 않은 대형 경기장을 기원전 1세기에 축조했다는 점에서 찬탄의 대상이 될 만하다.

아치가 길어지면 반원통형 천장을 갖는 볼트(vault)가 된다. 그것은 연속적인 아치를 갖는 공간의 천장 구조를 의미한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공간을 개선문에 사용했다. 즉,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대를 환영하기 위해 만든 기념문이다. 가장 오래된 티투스 개선문은 1세기에 만든 것으로 둥근 천장에는 티투스가 거대한 독수리 날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 새겨졌다. 볼트 천장을 갖는 이 길은 승리자만이 지날 수 있는 영광의 관문이었다. 그것은 볼트가 마치 월계관처럼 특별함을 상징하는 공간언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볼트형 통로를 갖는 문은 모든 개선문의 규범처럼 사용되었다.

아치를 우산처럼 원형으로 펼치면 반구형 천장인 돔(dome)을 만들 수 있다. 로마인들은 돔 구조를 발전시켜 판테온(pantheon)이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충격적 감동은 입구를 지나 원통형 건물(rotunda) 안으로 들어서야 느낄 수 있다. 높이 42m에 달하는 거대한 돔 천장이 펼치는 장쾌한 상승감. 돔을 구성하는 천장격자(coffer)가 점점 작아지면서 지름 8.3m짜리 중앙의 ‘눈(oculus)’으로 향한다. 그것은 쌓아서 만든 돔이 아니라 콘크리트처럼 부어 만든 돔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듯이 판테온의 돔은 우주다. 격자마다 청동별이 장식되었고, 돔 중앙의 천창 오큘러스는 태양을 상징한다. 우주선에서 바라보는 망망한 우주공간. 지름 8.3m짜리 천창에서 빛이 쏟아진다. 그리스 신전에서 신상으로 향하던 수평적 공간을 로마인들은 하늘로 향하는 수직적 공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무신론자라도 신성을 느낄 만하다. 7세기 이후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아치와 볼트와 돔, 그것은 로마건축을 넘어 서양건축의 뿌리가 되었다. 중세를 거치는 동안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처 고전주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이 만들어졌으나 로마건축의 핵심적인 구조는 단절되지 않았다. 교회의 신성함과 왕궁의 화려함과 관청의 권위를 표현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로마건축은 육중한 돌덩어리를 가지고 거대하고, 견실하고, 아름다운 구조와 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서양세계에 전수해 준 것이다.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석조 건축의 유산은 한국인들에게 경이로움과 부러움을 넘어 열등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찬탄할만한 서양 고전건축의 걸작들이 이런 요소를 갖는다고 해서 결코 주눅 들거나 열등감에 빠질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는 서양 사람들이 감탄할만한 목구조의 기술과 미학이 있으니. 거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품격있는 목구조의 미학. 돌은 돌이고 나무는 나무로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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