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봄 사랑 벚꽃 말고’ 아이유가 부른 이 노래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온다. 봄을 피해서, 손 맞잡고 안부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멀리에 두고, 꽃구경은 말고 골짝 깊숙한 곳에 숨은 절터를 찾는다. 이런, 난감한 일이. 삼층석탑이 오롯하게 서 있는 보천사 터를 환하게 핀 벚꽃이 감싸 안고 있다. 설법하는 부처를 수호하는 팔부신중처럼 의젓하고 당당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기에 혼자 누리는 이 호사가 죄스러워 탑 앞에 급히 무릎을 꿇는다. 잡아함경 화경花經에는 한 스님이 바람결에 스쳐가는 꽃향기만 맡았을 뿐인데 향기 도둑으로 내몰리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앉아 탑을 우러른다. 그리고 무리지어 핀 민들레 꽃밭을 배례석 삼아 차를 한잔 공양한다.

보물 제373호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은 이층 기단위에 세워진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탑이다. 2018년 발굴조사에서 보천사지에 대한 축조연대 및 사찰 명을 알려주는 명문 기와가 발견되었다. ‘통화 29년 숭엄사統和卄九年嵩嚴寺’, ‘봉림하鳳林下’가 그 내용이다. 통화 29년은 고려 현종 2년에 해당된다. 시간이 지나고 연구가 더 진행되면 이 탑의 이름은 숭엄사지 삼층석탑으로 바뀌지 않을까.

 

풀밭에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펼친다. 밥 한 숟가락마다 ‘나무아미타불’을 얹는다. 지붕돌의 아름다운 곡선을 쳐다보며 사과도 베어 문다. 절터에는 풀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별꽃은 총총 박혀있고 제비꽃은 저희들끼리 얼굴 맞대고 피어 화려한 보랏빛을 뿜어낸다. 노란 금창포도 도란도란, 광대나물도 돌담 밑에 줄지어 서로 몸을 비비댄다. 거리두기가 필요 없는 풀꽃들이 무량 부럽다.

단정하고 깔끔한 삼층석탑은 늦은 오후, 4.57m라는 키로 길게 그림자를 만든다. 나는 불영 아래서 쑥을 뜯고 달래도 캐며 탑 앞에서 하루를 보낸다. 봄빛 수상한 날이 계속되기에 ‘봄 사랑 벚꽃 말고’ 고려의 기와조각에게 오래된 절 숭엄사 이야기를 듣는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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