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헌산(1033m)의 가장 깊은 품속을 파고들어 오롯이 한 동네를 이루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차리(次里)는 국도 35호선을 따라 두서면소재지인 인보리에서 언양방면으로 10분 가량 오다 구량천을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어 거랑(하천)을 따라 한참을 올라오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외지인들의 방문을 반기며 마을 첫머리에는 고만고만한 가로수들이 양팔을 펼치고 반기고 있다. 돌이 많기로 이름난 곳임을 알리기라도 하듯 집집이 돌담에 에워쌓여 있고 밭둑이나 들판에까지 돌무지가 지천에 늘려 있다.

 돌이 많다보니 논·밭의 토심이 썩 깊지 못하다. 게다가 물을 가둬 둘만한 저수지가 거의 없어 농사짓기에는 다소 좋지 못한 환경을 갖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민들이 농사에 의존하는 비중이 여느 농촌마을만 못하다. 거기에 반비례해 축산을 하는 농가가 많다.

 한우 30~40두씩을 사육하는 가구가 8가구에 이르고 70여마리를 키우는 곳도 있다. 3~4마리 이하는 기본이다. 외지인들이 들어와 운영하는 양돈·양계장도 5곳이나 된다. 그중 양돈장이 4곳으로 1만마리가 넘는 대형 양돈장도 있다. 차리 이장 김태기씨(42)는 "논·밭농사는 지어봤자 힘만들뿐 소득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한우를 키우는 경우와 귀농한 젊은이들이 손쉬운 소득원으로 축산을 택하다보니 다른 동네보다 축산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축산 비중이 높아 농가 수입은 짭짤하지만 집집마다 배출되는 한우분뇨와 양돈·양계장이 마을을 둘러싸 악취가 만만찮다. 아랫동네인 구량리와 마찬가지로 한겨울을 빼고는 냄새가 온 마을을 뒤덮는다.

 오복순씨(71)는 "10여년 전만해도 우리농네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산골동네였다"며 "그러나 요즘은 밀려드는 등산객 발길과 양돈·양계장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로 마을이 점차 제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차리는 경주면의 남면에 속해 있을 때 차동이라 불렸다. 현재 두서 은행나무가 있는 구량리 중리의 다음 동네라는 뜻이다. 상차리, 중차리, 하차리 3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105가구에 남자 113명, 여자 125명 등 238명이 거주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많다보니 여자수가 조금 많은 편이다. 70대 이후 할머니가 혼자 살고있는 가구가 4가구에 이른다.

 고헌산 턱 밑에 위치해 국도와는 다소 떨어진 곳이지만 두서면 서하리 방말마을과 언양읍 다개리를 연결되는 도로가 좌우로 뚫려 있으며 경주시 산내면 소호마을로 이어지는 산길이 나 있다.

 상차리는 경주김씨 집성촌이고 하차리는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중차리는 두 성씨가 반반씩 섞여 있다. 한동네 사람들이 다 집안 사람들이다. 가깝게는 4촌에서 10촌까지로 대부분 아제와 형님·동생 호칭으로 통한다. 한순하 할머니(82)는 "집성촌이다보니 이 마을 출신사람들의 품행이 다 올곧다"며 "외지에 나가서도 몸에 밴 인사성이나 웃사람 공경자세로 칭찬이 자자할 정도"라고 말했다.

 상차리에는 시골인심과 물 맑고 공기좋은 곳을 찾아 전원생활을 꾸려나가는 이들이 4~5가구에 이른다. 울산시내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잇는 방두수씨(58)는 "3년전 이곳에서 터를 닦아 시내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집성촌이라 다소 배타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뒤에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웃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상차리에는 마을이 끝나는 부분에 정확한 수령을 알수 없는 오래된 소나무 두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차량을 돌려서 나가야 하는 기점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로터리소나무"라고 부른다.

 친척들끼리 모여 살다보니 인심이 아주 넉넉한 편이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문을 열어놓고 다니거나 밤을 낮삼아 다녀도 무섭지 않다고 자랑한다. 또 초상이 나면 백관(두건을 쓰는 8촌이내)이 수십명에 달할 정도여서 일처리가 일사천리다. 도로에 토지가 조금씩 들어가도 서로 내놓을 정도로 서로를 아낀다. 반면 단점도 있다. 대부분 나이많은 어른들이 많고 너무 서로에게 의지하다보니 공동으로 힘을 모아야 할 일이 생길 때 조카나 동생이 알아서 하라며 뒤로 빠지거나 앞장서는 리더가 없어 일 추진이 더딘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리의 가장 큰 숙원사업은 차리저수지 조기 완공이다. 예산이 모자라 4년째 공사를 질질 끌고 있기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차라리 골짜기 그대로 뒀더라면 더 좋았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공사를 위해 파헤쳐 놓은 곳에서 흙탕물이 내려오고 흙먼지가 날려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최차관씨씨(30)는 "저수지 축조가 농사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는 하지만 마을 본 모습을 자꾸만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흙탕물로 인해 마을앞 거랑에는 이제 다슬기와 버들치조차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 큰 걱정거리는 외지 축산농들이 자꾸 들어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우 몇마리 키울 것이라고 주민들을 안심시켜 놓고는 돼지나 닭을 키우는 대형 사업장이 들어서곤 하기 때문이다. 이장 김태기씨는 "허가를 울주군청에서 내 주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은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꼴"이라며 "담당공무원들이 허가를 내주기 전에 현장을 방문해 주민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결정해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차리에서 언양읍 다개리 빠져 나오는 길목에는 주민들의 고민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오리농장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