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성원이 문제해결의 주체되게
정부는 지원·조정하는 역할 맡아야
정책 결정과정 전문가 도외시 안돼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초래될 변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대학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재택 강의는 기존 대학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교육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초래될 정치, 경제, 종교, 가족관계 등 공적, 사적 분야에서의 변화는 예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코로나는 정부의 역할과 운영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본적으로 재난과 위기 대응의 일차적 책임은 어느 나라나 정부가 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관련 변수가 많아지면서 정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와 같은 사회적 재난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진단키트의 개발과 신속한 검사이다. 코로나를 정확하고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우리나라 진단키트는 세계에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이는 중국 우한에서 환자가 발생하자 시장수요를 정확히 예측한 민간 기업들이 미리 진단도구 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드라이브인 스루 검사 등 기발한 검사방법을 고안해 낸 것도 민간 병원들이다. 여기에 더해 환자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한 민간의료 인력의 헌신적인 희생,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국민들의 정책순응(policy compliance) 행태 등은 ‘방역모범국가’의 바탕이 되었다.

이와 같이 코로나 대응과정에서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체계적인 협력과 적절한 역할배분이 필요하다는 점이 코로나 대응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앞으로 공공서비스를 정부와 민간이 공동생산(co-production)하는 범위와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코로나를 계기로 정부는 공공적 성격을 띤 서비스라고 해서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고 공급하려는 시도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부문의 역량을 지원하고 보완하며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거버넌스 체제(governance system)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코로나 대응과정에서 또 하나 분명해진 것은 바로 전문가의 중요성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 대응 초기에 문제가 생긴 것은 대부분 전문가의 경고나 의견을 듣지 않고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시 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방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객관적인 정보와 자료를 가장 많이 축적하고 있고 다양한 정책대안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만약 처음부터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에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책결정 권한이 없다.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치권력이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공식적 정책결정자들이 먼저 나서서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지식을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정책결정에 전문가의 의견만 반영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나름대로 자기분야에만 국한된 시각을 가질 수가 있으므로 정책결정자는 보다 광범위한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이 맞다. 그래도 결정의 기본은 전문적·객관적인 정보와 자료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정책과정에서 전문가의 정책지식은 상대적으로 너무 소홀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이념이나 관료적 경험이 지나치게 중시되어 타당성이 낮은 정책들이 채택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보건·의료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에너지, 환경, 외교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정치인이나 관료들 못지않게 전문가들의 식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유능한 정부는 모든 사회문제를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사회구성원들 스스로가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을 코로나가 알려주고 있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