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코로나19로 정국이 어수선한 요즘에도 박물관으로 문의 전화가 종종 온다. 문의 내용 가운데 일부는 옹기구입에 관한 건으로 일요일 방문이 가능하냐는 거다. 이때, 박물관 측의 답변은 ‘일요일에는 판매장을 운영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인데, 이는 옹기마을의 특징을 엿보게 해 주는 한 장면이다.

우리나라 옹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천주교와 관련이 깊어 옹기 업에 종사 중인 천주교 신자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외고산 옹기마을은 특이하게도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가 우세한 집단촌으로 형성되었다. 이는 바로 옹기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故)허덕만이 기독교 신자로 마을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허덕만은 옹기마을에 오기 이전인 경북 영덕 오천리에서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외고산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신앙생활을 꾸준하게 이어갔다.

 

옹기업에 종사하면서도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권유하여 주말이면 교회에서 함께 생활했고, 교회에서도 옹기제작에 관심있는 사람을 따로 모아 제작기술을 전수했다.

허덕만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교회와 관련한 옹기 종사자 수가 60~70%를 차지했고, 지금 마을에서 활동 중인 배영화, 조희만, 진삼용 장인도 그때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다. 상황이 이와 같다 보니, 허덕만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옹기마을은 자연스럽게 일요일이 쉬는 날로 지정되었고, 다른 옹기점도 점차 영향을 받아 관행으로 정착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노동자 인권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요일에 쉰다는 개념은 사실 상상조차 어려웠던 때다. 즉, 허덕만 개인의 종교였지만 그가 외고산에서 차지하는 입지로 인해 마을의 성격까지도 바뀌게 된 것이다. 허덕만에 의해 외고산 내에 지어졌던 기도소는 지금 사라졌지만, 그때의 문화는 여전히 남아 흐르고 있다. 문소운 울산옹기박물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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