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리 울산시간호사회 회장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 건강을 위해 공헌해 온 간호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아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인 2020년을 ‘세계 간호사의 해’로 정했다.

또 국내외 언론에서 코로나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간호사의 역할과 기여도에 대한 보도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해다. 그러나 아직도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여건은 열악하고 힘든 상황이다.

3874명. 대구 동산병원이 2월2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뒤 50일간 대구·경북 환자를 지키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지원한 간호사의 숫자다. 이는 전국 의료현장 간호사 18만명의 2%에 이른다. 이들 중 심각한 현장상황을 반영해 중환자실 경력자를 우선 배치하다 보니 900명 정도가 실제 대구·경북을 찾아 환자를 돌봤다.

간호사 2%가 만들어낸 50일 간의 기적은 대단한 결과로 이어졌다. 전국 간호사들이 대구·경북 현장에 투입되면서 사태도 안정을 찾았다. 지난 2월29일 821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이 지역 신규 환자 숫자는 3월29일 25명, 4월10일 7명으로 뚝 떨어졌다. 2월18일 이 지역 코로나 확산 상황이 시작된 뒤 53일째다.

간호사 면허를 딴 20대 신입 간호사부터 은퇴간호사까지 이들의 마음은 오직 ‘바이러스와 싸워 환자를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신혼의 단꿈을 내려놓고 의료현장으로 달려간 간호사, 외국에서 한국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단숨에 한국을 찾겠다고 한 간호사, 2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마쳤다는 간호사도 있었다. 8살·7살·5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 간호사도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코로나 환자를 돌보았다.

사실 코로나 감염자가 확대되면서 대한간호협회 각 지부들은 자원봉사 보낼 간호사가 부족할 것에 대비해 회의하고 의논하기도 했다. 그런 고민을 했다는 자체가 이제 와서 미안할 따름일 뿐이다.

실제로 코로나 현장에 투입된 간호사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방호복 착용의 어려움이 첫 번째로 힘든 과정이었다. 몸 안에는 항상 땀이 줄줄 흐른다. 일만 힘든 게 아니라 방호복을 못 견뎌 힘들다. 못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함께 고생하는 동료와 환자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버텨냈던 간호사들이다. 병원 영안실에서 쪽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온 협회 관계자는 눈시울을 적셨다.

또 격리된 상태서 환자를 보는 것이 지치고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음압격리병동과 숙소만 오가며, 일상과 온전히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정된 숙소에 머물며, 숙소에선 컵라면·편의점 도시락, 곰탕·햇반·죽 등 포장음식으로 식사를 대체하며 지내야 한다.

파견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은 2주간 격리 생활에 들어갔다. 자가(自家) 격리 정도가 아니었다. 마을과 떨어진 빈집, 전기만 들어오는 곳에서 2주간 외로운 싸움을 한 간호사들도 있다.

코로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인 간호사들은 코로나 현장에서 보낸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선배와 후배 간호사 동료 등을 통해 감동받고 격려받으며 피곤하고 힘든 것을 이겨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을 다녀온 간호사들은 여전히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앞으로 자원봉사 간호사로 대체하는 임시방편 체계보다는 감염병 전문간호사나 전문병원 설립을 통해 국가적 재난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0%에도 못 미치는 한국간호사 숫자이면서도 어떻게 3874명이나 되는 간호사가 현장으로 자원했는지 세계 각국의 간호협회에서는 놀라고 있다.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간호사의 희생과 소명만을 강요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에 대비한 거점병원과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감염예방 전문 간호인력의 확충을 통해 상시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20 세계 간호사의 해를 맞아 세계 간호사들이 자신의 직업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이경리 울산시간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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