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UPI사업단장

주말 새벽에 KAIST 앞길을 걸었다. 요즘은 하루에 8000보를 목표로 새벽에 꼭 1시간 이상 걷는다. 울산에선 태화저수지 5~6바퀴를, 대전에선 KAIST길 아니면 갑천을 걷는다. 벚꽃이 사라진 자리를 영산홍과 자산홍, 철쭉이 빼곡히 채웠다. 새봄을 알리는 전령인 벚꽃이 희망과 순결을 속삭인다면, 형형색색의 철쭉과 붉디붉은 영산홍은 열정을 뽐낸다. 몇 종류의 꽃이 피었는지 헤아렸더니 흰색에서 자주색까지 모두 7가지였다. 어쩌면 진하고 흐린 차이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을 거다. 그래도 너무 아름다웠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은 우리네 삶과 닮은 꼴이다. 인간이 젊음의 한순간을 정점으로 늙어가듯,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던 화려한 꽃 역시 조용하고 쓸쓸하게 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벚꽃은 금세 활짝 피어 세상을 환히 밝히나 싶더니 봄비가 내리면 순식간에 잎만 남는다. 짧고 화려하기에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다. 아쉬워도 내년에 또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코로나 여파로 너무 조용하다 할 정도로 선거가 끝났다. 하나의 바이러스가 모든 걸 덮어버렸다. 울산 선거결과는 전국과 상이했다. 그 이유가 뭘까. 최근 기획재정부 차관의 “구박받는 제조회사와 종사자들이 코로나 사태 극복의 숨은 영웅”이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한국경제가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는 데 대해 “방역 성공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우리 경제의 특성과 강점에 그 비밀이 있다”고 했다. 이번 위기로 각국 서비스업이 직격타를 맞았는데 한국은 서비스업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제조업 경쟁력이 아직 높다는 것이다. 특히 천덕꾸러기 신세나 다름없었던 풀뿌리 제조업체에 주목했다.

경제가 급성장해 임금이 상승하고 일손이 부족할수록 제조공장을 국내에 두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마스크 공장이 100여개 있어 그나마 마스크도 이 정도로 숨통을 돌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위기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공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줬다. 한때 나도 공장과 축사, 거대 창고가 거주지와 너무 가까이 있어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왜 우리는 유럽 도시같이 깔끔하고 엄격하게 도시계획을 못할까 아쉬워하면서. 무슨 정책 보증을 10년씩이나 해주며 중소기업을 연명시키냐고 목소리 높인 점을 반성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수많은 구박과 천대를 받아가며 어떻게든 국내에 뿌리를 내리고 사업을 이어온 제조회사와 그 종사자들이 대한민국과 울산을 지켜온 숨은 영웅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울산시민의 표심은 지역경제 회생 및 울산발전이다. 이는 울산의 미래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이다. 이제 울산경제의 회생 성공은 ‘2인3각 경기’와 다름없다. ‘한지붕 두가족’이 산적한 경제현안 문제를 해결하고 원활한 국비 확보를 위해선 여야(與野)를 초월한 정치적 협치가 필수라는 얘기다. 결국 협치의 기술이 그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에너지 정책의 공조 여부다. 물론 100% 공감은 어렵다. 하지만 울산경제 재도약 및 시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큰 명제 아래 한뜻으로 모아야 한다. 독불장군은 절대 안 된다. 시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요량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는 21대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과 요직 확보다. 여섯 분의 국회의원 당선인은 울산경제에 필요한 상임위에 골고루 포진해야 한다. 특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울산경제 회생에 매우 중요하다. 기필코 산자위 위원장을 차지해야 한다. 3선 이채익 의원은 산자위 간사를 맡은 경험도 있지 않은가.

1.5㎞에 이르는 영산홍 꽃길은 흰색부터 자주색까지 모두 7가지로 이루어졌다. 가장 많은 꽃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붉은 영산홍이었다. 하지만 흰색 철쭉과 자산홍까지 어울려 피었는데도 그 자태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꽃들 사이에 대화와 타협, 소통과 협치가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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