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미옥 호계고 교사

사월이 가고 곧 오월이 곁으로 올 것이다.

눈 들어 둘레를 보면, 온갖 연두들이 자기다운 빛깔로 세상을 향해 맘껏 그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뭇 생명들이 환한 봄볕에 찬란하다. 꿈틀거리는 연두를 보며, 속으로 가만 정현종의 시 ‘비스듬히’를 읊조린다. 기대고 있는 목숨들을 생각한다.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것에게까지 내 목숨은 신세를 지고 있을 것이다. 내 목숨 곁에 있는 그 숱한 생명 앞에 절로 두 손 모아진다.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아침저녁으로 ‘카톡’으로 반 아이들과 안부를 묻는다. 온라인 세상에는 살갗이 없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서로의 안색을 살 필 수 없다. 이름 부르며 인사를 나누는 데 짧으면 오 분, 길어도 십 여분이면 충분한데, 출석 확인을 하루 종일 해야 하는 날이 많다. 오전 내내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이비에스 클래스 룸에서 진행되는 수업 과정을 살핀다. 제대로 가 닿고 있는지, 어떤 파문이라도 일어나기나 하는지. 온기가 생략된 새로운 세상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촉각과 미각과 후각, 청각이 닿지 않는 새로운 세상에서 일어나는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참 궁금해진다. 몇 가지 단서들로 아이들이 놓인 시공을 상상하며 ‘그러려니’ 하고 짐작해 볼 뿐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감옥’에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조심 살아가는데, ‘코로나 감옥’ 밖 자연은 무탈해 보인다. 얼마 전에 인도 뉴델리 하늘이 파랗게 드러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뉴델리는 전 세계에서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나쁜 도시라고 하는데. 차와 공장들이 멈춰서니 제 맑은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먼지로 범벅된 뉴델리 사진과 티 한 점 없는 뉴델리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 충격이었다.

“과학은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데 쓰는 한 방법입니다. 과학은 시간을 꿰뚫어 봅니다. 인간이 다른 어떤 방법에서 기울이는 노력의 힘도 과학의 힘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은 어느 머나먼 천체가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뒤에 어디에 있을지, 그가 수천 년 전에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떻게 살았는지 까지도 말해 줄 줄 압니다. 그런 특별한 힘을 가진 과학자들이 오늘날 유례없이 단합된 목소리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최근에 들어서야 깨닫게 된 지구적 재앙을 과학자들은 어언 70여 년 전부터 예측했습니다. 지금 과학자들은 우리 인류가 자초한 대멸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 이번 대멸종은 지구에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 벌어졌던 대멸종들과는 차원이 다른 재앙이리라고 경고합니다.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과학자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스스로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사안의 무서움과 시급성을 실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이들과 그 후손들의 삶을 자신의 현실처럼 가깝게 느끼고 그럼으로써 몽유병자처럼 무심히 파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있을까요?”(앤 드루얀의 <코스모스>에서)

출석체크를 성실히 하며, 아이들이 무탈하기를 바라고, 이런저런 자료를 만들어 이비에스 공부방에 올리고, 곁에서 아이들 손잡을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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