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야~안현미 作(40×40 한지 채색) -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이 소리도 없이 떨어지다가 나비가 되어 화르륵 날아오른다. 나비도 꽃잎도 보랏빛 꿈이다. 아련하고 신비롭다.

산책은 가볍게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머리가 복잡할 때나 몸이 무거울 때 자연을 벗하며 걷고 나면 얼마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산책을 즐기는 나는 그날도 길을 나섰다. 아파트 옆 공터에 평소에 못 보던 작은 집 한 채가 놓여 있었다. 이제 막 사들인 듯 깔끔하게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개나 고양이가 살 법한 집이었다. 공용 장소에 놓였지만 아파트 입구와는 떨어져 있어 주민들이 불편을 느낄 위치는 아니었다. 집 앞에는 빈 용기 하나가 놓여 있고, 안에는 노란 털의 고양이 한 마리가 자는 중이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이라 누군가가 길고양이를 돌보려고 마련한 장소 같았다. 어릴 때 고양이와 더불어 생활해서 정을 붙이기에 좋은 동물임을 체득한 상태라 그러려니 여겼다.

그 고양이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궁금해서 살펴보곤 했는데, 주로 집 안에서 잠꾸러기처럼 몸을 말고 있을 때가 많았다. 밥그릇에는 사료가 담겨 있었고, 집 안에는 보드라운 담요가 펴져 있었다. 집을 마련하고 매일같이 사료를 챙겨주려면 수월찮게 돈과 노력이 들어갈 터였다. 추운 겨울 동안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그곳을 지나는데 큰소리가 들렸다. 밥그릇은 뒤집혀 있었고, 사료는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야윈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내용을 들어보니 고양이 때문에 냄새가 나고 더럽다는 거였다. 상대방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는데, 그 남자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욕설을 통해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여자임을 알아챘다. 남자는 여자가 사라진 입구를 쳐다보며 한참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고양이는 집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안에 떨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곳을 자주 지나다녔지만, 돌보는 이가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치웠는지 냄새는 나지 않았다. 사료를 담은 그릇도 깨끗이 닦여 있어 집에서 키우는 반려묘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고양이 집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뿐 통행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고, 산책길과 연결된 후미진 곳에 있었기에 미관상 보기 싫지도 않았다. 보통 고양이가 보이는 경계하는 몸짓이나 카악, 하며 공포심을 조장하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자는 행패를 부렸다.

처음으로 고양이의 모습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날렵한 고양이를 연상했는데 목줄을 두른 고양이는 온전히 서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걸었다. 뒷다리 한쪽이 다쳤는지 서서 걸으면 자꾸 넘어갔다. 장애 고양이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였는지, 세상의 위험에 노출되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겨울 동안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던 마음은 어느새 연민으로 바뀌었다. 자유롭게 뛰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힘든 고양이라니…. 길고양이가 몸에 장애가 있다는 건 생존에 큰 결격사유가 된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야 말해 무엇할까. 남자가 한바탕 난동을 부리고 난 뒤에도 밥그릇에는 사료가 채워져 있어 적잖이 안심이 됐다. 고양이 돌보미를 자처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산책을 나갈 때마다 고양이가 잘 있는지 살피는 게 일상이 되어갔다. 자고 있으면 편안해 보였고, 밖에 나와서 쓰러질 듯 걸을 때는 걱정이 됐다. 그래도 고양이를 만나면 반가웠다. 기우는 몸을 버티면서 걸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대견했다. 어떤 고난에도 일어서려는 의지 같은 게 엿보였다. 언제부턴가 고양이를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저러다가 잘 걸을 날도 있겠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품었다. 고양이가 걷는 모습을 본 날이 열 손가락쯤 될까 말까 한 어느 날 고양이가 사라졌다. 너무 놀라 고양이 집 안을 들여다봤지만, 텅 비어 있었다. 밥그릇은 휑하니 비어 있었고, 담요는 반듯이 개어진 채 채였다. 컴컴한 집을 들여다보며 고양이의 흔적을 찾으려 애를 썼다. 금방이라도 내 곁을 맴돌 것 같은 고양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순해진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세상은 꽃 천지였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 간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다. 어김없이 산책길에 나선 그날도 고양이 집을 지나고 있었다. 봄이 와도, 꽃이 펴도, 고양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넜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고양이를 돌보던 이의 마음은 봄볕처럼 주변에 머물렀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풀려던 나라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우리나라는 생명을 우선으로 했기에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칫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생명을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작은 생명체를 돌보던 마음이 소중하고 그립게 와 닿는다.

봄바람이 불자 이팝꽃이 화르륵 난다. 수십, 수백, 수천 마리의 나비가 작은 집 위로 날갯짓하며 하늘거린다. 햇살 받은 흰나비들이 고양이 집에 내려앉는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 정정화씨

■정정화씨는
·2015년 경남신문·농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16 신예작가>에 단편 ‘쿠마토’ 실림
·2017년 소설집 <고양이가 사는 집> 출간
·2019년 6인 작가 테마소설집 <나, 거기 살아> 출간
·2019년 <실금 하나> 출간

 

 

 

 

▲ 안현미씨

■안현미씨는
·영남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8회, 그룹전 250여회
·대한민국미술대전·부산비엔날레 휘호대회 우수상 2회
·부산비엔날레 휘호대회 초대작가
·한국미협·울산미협 회원
·울산현대미술작가회·울산여류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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