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포용도시 울산 위해선
일상 속 성차별에 대한 민감성
개인·조직 차원 향상 노력 중요

▲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은 성폭력, 성희롱사건과 늘 함께 거론되지만 이 말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뉴스기사의 댓글을 읽다보면 성인지 감수성을 ‘킹인지 갓수성’이라고 왜곡된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왜곡된 말이 생겨나는 이유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이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단순히 감수성만으로 판단하자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왜곡된 용어나 말들이 생겨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성인지 감수성의 개념을 정의한 바에 의하면,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하며, 법조계에서는 성범죄 사건 등 관련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56년전에 성폭행에 저항했다가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성폭력 피해자가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이런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되돌아보게 되는 반성적 개념이 성인지 감수성 개념인 것이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는데 피해자는 유죄판결을 받고 56년 동안을 고통 속에 살아오다가 자신은 성폭력 피해자 일뿐이지 가해자가 아님을, 자신의 행위가 정당방위였음을 이제라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또한 그 당시 판결이 옳지 않았음에 동의하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인 것이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은 개인에 따라 일하는 조직의 환경에 따라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성 균형적인 사고를 하면서 생활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민감성이 결핍되어 상대의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어나 행동을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이 어떠한 가에 따라 한 개인의 행동은 성별관계 속에서 많은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개인의 성인지 감수성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측정해보는 일은 중요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각자가 근무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 수준에 따라 조직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발생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조직적 차원에서의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노력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 노력의 첫 발걸음을 어떻게 출발해야 할 것인가?

먼저 성인지감수성에 눈을 뜨려면 나 자신과 맞닥뜨릴 용기가 필요하다. 나 자신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성차별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고 성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키워나가는 노력을 계속 해야할 것이다.

또한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성인지 감수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추진체계의 마련도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민들의 성인지 감수성 개발을 위한 젠더교육센터나 공공기관 종사자의 성인지감수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울산이 성평등 포용도시로 나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시민들의 성인지 감수성 증진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모색해 보았으면 한다.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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